시대의 불안, 역사의 기록 그리고 순환하는 삶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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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립미술관 신진작가 전시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3
‘슬픈 나의 젊은 날’ 8월 6일까지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3 '슬픈 나의 젊은 날'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3 '슬픈 나의 젊은 날' 전시 전경.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1980년대에 태어난 부산 작가 3인. 그들은 어떤 시선으로 세상을 볼까.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3 ‘슬픈 나의 젊은 날’에서 그 답의 일부를 만날 수 있다.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은 1999년 시작한 정례전으로, 지역의 역량 있는 신진작가를 발굴·소개한다. 지금까지 약 70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올해로 17회를 맞이했다. 이번 전시에는 부산 출신으로 부산에서 활동 중인 김덕희, 오민욱, 조정환 작가가 참여했다. 미술관 3층에서 열리는 전시는 크게 3개 공간으로 나뉜다. 가속, 에너지, 인상 등 각 공간 메인 작가를 중심으로 3인의 작품이 어우러진다. 전시는 오는 8월 6일까지 이어진다.


조정환 작가. 오금아 기자 조정환 작가. 오금아 기자

■조정환 작가 ‘도시 그리고 불안’

고층빌딩으로 가득한 현대사회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 질문해

조정환 작가는 도시 속 드러나지 않는 불안을 드러낸다. 어린 시절 고층 아파트로 이사를 간 작가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도시에서 길을 걷다 위를 올려다보면 ‘압박 이상의 것’을 느낀다고 했다.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작가는 도시의 변화를 지켜보며 ‘우리는 과연 안전한가’를 생각했다. “하나의 생명체로 내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헷갈릴 때가 있어요. 도시가 따라 올 수 있는 사람만 따라오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조 작가는 코로나 팬데믹을 지켜보며 ‘레드얼럿’ 연작을 시작했다. 불안, 분노 등 여러 감정이 겹치는 가운데 좌표를 잃은 것 같은 느낌. 팬데믹은 작가에게 색깔과 붓질로 자신을 드러내는 전환점이 됐다. 동굴 안에 매달린 자루 시리즈도 팬데믹의 영향을 받은 작품이다. 그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자루에 갇힌 채 홀로, 비겁한 투쟁을 하고 있다’고 작가 노트에 썼다.

조정환 작가의 회화 작품. 오금아 기자 조정환 작가의 회화 작품. 오금아 기자

고층빌딩의 생활 감각을 형상화한 ‘이상도시’와 지상을 채운 아파트를 비석 이미지와 연결한 ‘집단서식’ 시리즈도 인상적이다. “인간은 무엇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뭉쳐 살까를 고민해 봤어요. 자연에서 동물들이 모여 사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싸우고 서로 비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도시의 가속화, 삶의 가속화에서 느끼는 슬픔이 그림에 들어 있다.


김덕희 작가. 오금아 기자 김덕희 작가. 오금아 기자

■김덕희 작가 ‘열, 온기와 순환’

온기 느껴지는 손·발 석고 조각

소중한 존재 기억하고 위로 전해

파라핀 왁스 기둥이 히터의 열에 조금씩 녹아내린다. 한 줌의 물이 떨어지면서 바닥의 열과 만나 수증기가 되어 흩어진다. 설치작가 김덕희에게 ‘기술’은 붓이며 조각도와 같다. 작가는 “정지된 오브제가 아니라 ‘일어나는 현상’을 보여주려니 그 현상을 일으키는 기술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전시 공간에 들어서면 바닥에 놓인 수많은 손과 발 모양의 석고 조각을 보게 된다. ‘하얀 그림자’라는 작품으로 작가가 만난 사람들의 신체 일부를 캐스팅한 것이다. “처음에는 내 손, 다음은 어머니 손, 사회적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제가 사는 다대포 어부와 지인들의 손 모양을 떴어요.”

파라핀을 코팅한 석고 조각이 부드럽다. 조각 내부에 열선이 들어 있어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진다. 만져보면 실제 사람의 체온처럼 조각마다 온도가 다르다. “온기를 통해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소중한 존재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김덕희 작가의 '바르도'. 산 모형에 빛을 비추면 아기와 새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금아 기자 김덕희 작가의 '바르도'. 산 모형에 빛을 비추면 아기와 새의 모습이 나타난다. 오금아 기자

김 작가가 열(체온)을 주제로 작업을 한 지는 오래됐다. 열화상 카메라로 보면 온도를 전달받은 물체의 형상이 드러난다. “에너지를 전달하면 이 아이가 살아나는구나 생각했어요.” 빛을 더하는 작업도 같은 이유다. 곤충 사체를 묻어주며 영감을 받은 작은 산 형상에 빛을 비추면 아기와 새 그림자가 생기는 ‘바르도’, 관 위에 파라핀 왁스를 부어 완성한 ‘밤으로 덮다’. 작가는 ‘밤으로 덮다’의 경우 다시 태어나기 위한 준비 과정으로서 밤의 베일이 관을 덮고 있는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했다. 순환하는 삶과 죽음, 그 속에 온기를 더하는 예술이 있다.


오민욱 작가. 오금아 기자 오민욱 작가. 오금아 기자

■오민욱 작가 ‘기억과 경험의 확장’

영화감독… 여러 시간의 역사 관심

실존 인물 비극 다룬 사운드 작업도

오민욱 작가는 영화감독이다. 영화를 제작하는 그에게 미술관 전시는 ‘순서대로 배치된 영화도 사람마다 다르게 기억하고 경험할 때가 있는데, 조금 더 확장된 경험을 만들어 볼 수 있는’ 기회이다.

4채널 비디오 ‘피라미드’는 ‘유령의 해’에 출연한 이승미 배우와 인터뷰하는 장면을 담았다. 오 작가는 “4개 채널 비디오가 무한히 어긋나 있는 작품으로 미술관이 문을 여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단 한 번도 같아지는 적이 없다”고 했다.

오 작가는 ‘역사’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역사와 다른 개념을 가정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과거 특정 시간의 경험이 발생한 이후 여러 형태의 시간을 거치게 돼죠. 현재 시점에서 당시 시간을 열람할 때 발생하는 여러 시간이 있다고 봐요.” 오 작가는 ‘역사’가 개인이나 사회가 가지는 절대적 또는 상대적 시간을 거치면서 변형되고 무너진다고 했다. 그렇게 역사가 현재에 도달하는 과정을 작품으로 표현한다.

오민욱 작가의 4채널 비디오 '피라미드'. 오금아 기자 오민욱 작가의 4채널 비디오 '피라미드'. 오금아 기자

장편영화 ‘유령의 해’(2022)는 조갑상 소설가의 <밤의 눈>을 원작으로 한다. 오 작가는 영화 후반작업 과정에서 김해국민보도연맹사건 기록을 봤고, 경찰에 의해 살해된 진영중학교 교사 김영명의 존재를 알게 됐다. 김영명은 1950년 9월 10일 발생한 진영살인사건(부산일보 1950년 10월 3일 자 보도)의 피해자이다.

작가는 동명의 사운드 작업 ‘김영명’을 이번 전시에서 소개한다. 어두운 복도에 귀뚜라미와 기차 소리가 들린다. “피해자가 살해되던 밤을 음력으로 추적해 보니 달이 뜨지 않는 캄캄한 밤이더군요. 실제 인물의 기록을 마주했을 때 느낀 슬픔의 동요가 굉장했어요. 그 슬픔이 지금도 계속 맴돌고 있음을 표현하고 싶었죠.”

'슬픈 나의 젊은 날' 전시 전경. 영상은 오민욱 작가, 설치는 김덕희 작가 작품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슬픈 나의 젊은 날' 전시 전경. 영상은 오민욱 작가, 설치는 김덕희 작가 작품이다. 부산시립미술관 제공

한편 부산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와 연계한 포럼을 오는 25일 오후 1시에 개최한다. 부산 동시대 미술의 현황과 전망을 논의하는 포럼 ‘우리들 이야기’는 총 3부로 구성된다.

1부 ‘아티스트 런 스페이스’에서는 오픈스페이스 배 김정훈, 공간 힘김선영, 영주맨션 김수정·이봉미, 스페이스 사랑농장 송성진·김도영 등 지역 청년 전시공간 운영자들에게 현장 이야기를 듣는다. 2부 ‘비평과 실천’에서는 청년들이 본 비평 지형의 문제 의식과 대안적 실천을 논의한다. 도서출판 베리테 정진리, 문학비평가 김대성, 비평 웹진 쌜러드 이보리, 미술비평가 엄제현이 참여한다. 3부 ‘지역 미술사’에서는 예술공간 돈키호테 이명훈,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조은비 등이 나와 지역 미술사 연구 사례를 공유한다. 포럼은 부산시립미술관 누리집을 통해 선착순으로 참가 신청을 받는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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