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만 장 '푸른 기와' 아래서 무얼 섬겼을까…개방 1년 ‘청와대 탐방’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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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여 년간 역대 대통령 12명 집무·생활 공간
지난해 5월 개방 이후 1년간 360만 명 발길
통일신라시대 불상 포함 경내에 문화재 3점
북악산 전망대 오르면 광화문광장 한눈에…

청와대 본관 로비와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한 외부와 달리 본관 내부는 샹들리에와 레드카펫 등 화려한 서양식 장식이 눈길을 끈다. 청와대 본관 로비와 2층을 연결하는 계단. 전통 궁궐 건축 양식을 바탕으로 한 외부와 달리 본관 내부는 샹들리에와 레드카펫 등 화려한 서양식 장식이 눈길을 끈다.

청와대가 국민 품으로 돌아온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5월 10일 전면 개방된 이래 지난달까지 360만 명이 발걸음을 했다. 70여 년간 대통령 집무·생활공간이었던 청와대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와 조선시대까지 다다른다. 대한민국 최고 권력이란 상징은 내려놓았지만, ‘푸른 기와’에는 우리나라의 굴곡진 근현대사가 고스란히 서렸다.

■ 반짝이는 ‘청기와’

청와대를 관람하려면 먼저 홈페이지(‘청와대, 국민 품으로’)에서 날짜와 시간대를 예약하는 게 좋다. 입구는 ‘정문’과 춘추문을 통해 들어가는 헬기장 옆 ‘37문’ 두 곳이다. 청와대의 중심인 ‘본관’부터 만나고 싶다면 정문을 택하는 게 낫다. 평소 대통령과 각국 정상만 이용할 수 있었던 정문은 들어가는 느낌부터 남다르다. 입구에서 모바일 예약 바코드를 찍고 입장하면, 종합안내소 너머로 푸른 빛깔의 웅장한 팔작지붕이 관람객을 맞는다.

지붕은 작은 햇빛에도 반짝인다. 한 장 한 장 유약을 발라 도자기처럼 구워 낸 기와 덕분이다. 100년을 견딘다는 청기와는 본관 지붕에만 15만여 장이 얹혔다. 푸른 기와에 담긴 정성은 이곳에서 이뤄진 국정의 무게감을 짐작게 한다. 본관 앞 게양대는 2개인데, 하나에만 태극기가 나부낀다. 나머지 하나엔 대통령 존재를 알리는 ‘푸른 봉황기’가 걸렸지만, 대통령실 이전으로 함께 옮겨졌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신축한 청와대 본관. 한 장 한 장 구워낸 청기와 15만여 장이 지붕에 얹혔다. 1991년 노태우 대통령 때 신축한 청와대 본관. 한 장 한 장 구워낸 청기와 15만여 장이 지붕에 얹혔다.
1993년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 건물 시절의 청기와.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당시 '경무대' 건물 명칭을 '청와대'로 바꿨다. 1993년 철거된 청와대 옛 본관 건물 시절의 청기와. 윤보선 대통령은 1960년 당시 '경무대' 건물 명칭을 '청와대'로 바꿨다.

본관 입구로 들어서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까지 화려한 레드카펫이 펼쳐진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해 역대 대통령들이 방문객과 함께 종종 기념사진을 촬영한 장소여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계단이다. 2층에는 대통령 집무실과 접견실이 온전히 남아 있다.

본관의 서쪽 별채 ‘세종실’과 동쪽 ‘인왕실’에선 청와대 개방 1주년 기념전시(‘우리 대통령들의 이야기’)가 한창이다. 청와대를 거쳐간 대통령 12명의 소품을 전시 중이다. 연탄난로·조깅화·원예가위 등 대통령마다 대표 물건이 흥미롭다. 대통령에 앞서 한 개인으로서 생활상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

청와대 하면 누구나 본관을 먼저 떠올리지만 역사는 그리 오래지 않았다. 노태우 대통령이 1991년 신축하기 전까진 인근 수궁터에 옛 본관이 자리했다. 과거 청와대 일대는 1865년 경복궁 중건과 함께 후원 역할을 하며 ‘경무대’라 불렸다. 일제는 1939년 경무대에 본관 건물을 짓고 조선총독 관사로 썼다. 광복 이후엔 3년 동안 미군정 사령관 관저였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면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집무실 겸 관저로 사용했다.

본관 신축으로 쓰임을 다한 옛 본관 건물은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1993년 철거됐다. 반세기 만에 사라진 경무대 건물 자리엔 당시 기와 장식물인 ‘절병통’만 덩그러니 남아 옛 위치를 전한다.

관저는 아쉽게도 내부를 둘러볼 수 없다. 창문을 통해 실내 모습이 조금 들여다 보이는 정도다. 대신 춘추관 2층 브리핑룸에 전시 중인 청와대 식기·가구를 보며, 관저 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청와대 옛 본관 터. 잔디 위에 놓인 '절병통'이 당시 위치를 알리고 있다. 청와대 옛 본관 터. 잔디 위에 놓인 '절병통'이 당시 위치를 알리고 있다.
대통령 부부의 생활공간인 관저. 내부는 비공개이며, 건물 외부만 한 바퀴 돌며 둘러볼 수 있다. 대통령 부부의 생활공간인 관저. 내부는 비공개이며, 건물 외부만 한 바퀴 돌며 둘러볼 수 있다.

■ ‘경무대’의 기억

청와대란 이름은 윤보선 대통령의 작품이다. 그는 1960년 4·19혁명으로 제2공화국이 출범하면서 일제와 자유당 독재의 잔재를 씻는다는 취지로 기존 경무대 명칭을 ‘푸른 기와집’이란 의미의 청와대로 바꿨다.

개명 이후 60여 년이 흐른 현재에도 청와대 경내엔 몇몇 유적이 남아 옛 경복궁 후원이자 경무대 시절 이야기를 전한다. 관저 인근 ‘침류각’은 1900년 전후 건립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통가옥 양식의 누각이다.1989년 관저를 신축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흐르는 물을 베개로 삼는다는 뜻의 침류각은 경복궁 후원에서 연회를 베푸는 용도였다.

‘오운정’은 침류각과 함께 서울시 유형문화재이자 비슷한 연대에 건립된 정자다. 관저 입구에서 뒷산 방향으로 가파른 산책로를 10분 정도 오르면 이름대로 ‘5색 구름’처럼 반가운 정자가 모습을 드러낸다. 역시 관저 신축으로 옮겨온 자리다. 침류각과 달리 오운정은 현판이 남아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친필이다.

경복궁 후원 시절 연회장으로 쓰인 '침류각'. 관저 주변에 있다가 198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경복궁 후원 시절 연회장으로 쓰인 '침류각'. 관저 주변에 있다가 1989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왔다.
관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석굴암 본존불을 닮아 온화한 자태를 지녔다. 관저 뒤편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보물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 석굴암 본존불을 닮아 온화한 자태를 지녔다.

청와대 경내 문화재 3개 중 으뜸은 오운정에서 3분 거리인 ‘불상’(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이다. 멀리 경주에 있던 석불이 어떻게 청와대 뒷산에 위치하게 됐을까. 뜻하지 않은 여정엔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다. 9세기 통일신라시대 경주의 한 사찰에 자리를 잡은 이 불상은 1913년께 서울 남산 왜성대 조선총독 관저로 옮겨오게 된다. 이후 1939년 경무대 총독 관저 시절 다시 이사를 한 뒤 1989년 대통령 관저를 새로 지으면서 지금의 자리에 마지막 터를 잡았다.

불상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다. 석굴암 본존불의 양식을 계승해 얼굴과 몸, 의복과 손 모양까지 닮았다. 특히 청와대 불상은 고대 석불 가운데 드물게 외양이 온전한 형태로 보전돼, 2018년 보물로 승격됐다.

통일신라시대 왕족과 귀족,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 해방 이후엔 대한민국 대통령들까지. 속세와 상관없이 두루 섬김을 받아 온 불상의 세월은 어떠했을까. 1000년이 훌쩍 넘는 질곡의 시간을 묵묵히 품었다고 생각하니 불상의 자태가 더욱 자비로워 보인다.

청와대 녹지원 잔디밭 한가운데 뿌리내린 '반송'. 둥근소반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청와대 녹지원 잔디밭 한가운데 뿌리내린 '반송'. 둥근소반을 닮아 붙은 이름이다.
소정원 입구의 '불로문'. 이 문을 지나면 무병장수한다는 얘기가 전한다. 소정원 입구의 '불로문'. 이 문을 지나면 무병장수한다는 얘기가 전한다.

■ 자연 속을 거닐며

북악산 자락에 위치한 청와대는 주변 자연도 매력적이다. 경내에는 3개 정원이 있는데 그중 ‘녹지원’은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힌다. 120여 종의 나무와 함께 역대 대통령의 기념식수가 자란다. 녹지원 한가운데 버티고 선 ‘반송’은 청와대 내 천연기념물 노거수 6그루 중에서도 으뜸이다. 이름처럼 둥근소반을 닮은 모습은 웅장미와 단아미를 동시에 지녔다.

1968년 1000평 부지에 잔디를 심으면서 조성된 녹지원은 어린이날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국민들에게도 익숙하다. 김영삼·문재인 대통령 때는 인근 주민들을 초청해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

녹지원에서 본관으로 걷다 보면 ‘소정원’을 만난다. 이름처럼 아기자기한데, 본관쪽 정원 입구에 돌로 세운 ‘불로문’이 있다. 문을 지나면 무병장수한다는 속설이 있어 관람객들에게 인기다. 2014년엔 박근혜 대통령이 미국 오바마 대통령과, 2017년엔 김정숙 여사가 멜라니아 트럼프 여사와 함께 불로문을 지나며 소정원을 거닐기도 했다.

춘추관쪽 등산로 출입구를 따라 '청와대 전망대'로 오르는 길. 청와대 경계 성벽(왼쪽) 삼엄한 철조망이 대조를 이룬다. 춘추관쪽 등산로 출입구를 따라 '청와대 전망대'로 오르는 길. 청와대 경계 성벽(왼쪽) 삼엄한 철조망이 대조를 이룬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잔뜩 먹구름이 낀 날씨임에도 가까이 청와대 본관부터 멀리 광화문광장과 남산, 여의도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잔뜩 먹구름이 낀 날씨임에도 가까이 청와대 본관부터 멀리 광화문광장과 남산, 여의도 63빌딩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경내 곳곳엔 작은 개울과 연못도 있다. 북악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은 물고기의 몸짓마저 평화롭게 만든다. 드문드문 야생화를 구경하다 보면 의외의 장소에서 대통령 기념수를 만나는 재미도 있다.

여유가 있다면 청와대 뒤편 백악정과 청와대 전망대에 올라 볼 만하다. ‘북악산 한양도성 탐방로’ 구간 중 하나로, 지난해 청와대를 개방하면서 ‘청와대~북악산’ 구간도 함께 열렸다. 등산로 출입구 3곳 중 춘추관 쪽에서 출발해, 백악정을 지나 청와대 전망대를 찍고 반대편 칠궁 뒷길 쪽으로 내려오는 데 1시간 정도면 넉넉하다. 청와대 경계 성벽을 따라 이어진 등산로 곁에는 삼엄한 철조망과 함께 간간이 초소·진지도 눈에 띈다. 청와대가 최근까지 국가보안시설이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청와대 전망대’에 오르면 가까이 본관 청기와 지붕부터 멀리 광화문광장과 남산, 관악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궂은 날씨에도 왼쪽으로 롯데월드타워, 오른쪽에는 여의도 63빌딩까지 두루 내다보인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국민을 굽어살피기 알맞은 장소다. 74년 동안 청와대를 거쳐 간 대통령은 모두 12명. 이들은 청와대 뒷산에 올라 무엇을 생각했을까.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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