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국가보훈부 승격, 국립묘지 개선 방안은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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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권·위계 걷어내고 ‘묘지 평등주의’ 큰 그림 그릴 때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국군묘지로부터 시작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위계와 계급에 따른 묘역의 불평등성이 줄곧 문제로 지적돼 왔다. 유엔이 관리하는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나 프랑스의 판테온처럼 ‘묘지 평등주의’가 잘 구현된 곳으로 꼽힌다. 정종회 기자 jjh@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국군묘지로부터 시작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위계와 계급에 따른 묘역의 불평등성이 줄곧 문제로 지적돼 왔다. 유엔이 관리하는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은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나 프랑스의 판테온처럼 ‘묘지 평등주의’가 잘 구현된 곳으로 꼽힌다. 정종회 기자 jjh@

현충일 전날인 6월 5일, 국가보훈부가 출범했다. 1961년 군사원호청 출범 이후 62년 만의 부 승격이다. 때맞춰 박민식 초대 장관이 15일 “국립묘지를 사람들이 많이 찾는 핫플레이스로 만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묘지는 그 사회의 거울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국립묘지는 국군묘지로부터 출발한 태생적 한계 때문에 지위와 계급에 따라 안장 대상자와 구역, 규모, 비석의 차이가 엄연하다. 핫플레이스도 좋지만 묘지의 불평등성과 구조적 문제들을 직시하는 것이 먼저다.


◆“친일파에게 국립묘지라니”

“독립운동가를 탄압하고 대한민국 국민을 학살한 반민족행위자와 군사반란 가담자 등을 국립묘지에서 이장하라.” 현충일이었던 이달 6일, 국립대전현충원 앞이 시끌벅적했다. 국립묘지법 개정을 촉구하는 사람들이 모여 목소리를 높인 것인데 핵심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현재 대전현충원에는 친일반민족행위자 37명, 5·16과 12·12 군사 반란 가담자 21명, 반헌법 행위자 7명, 제주 4·3 등 민간인 학살 관련자 10명이 안장돼 있다. 모두가 객관적, 역사적 사료를 통해 친일 등의 행각이 드러난 사람들이다. 이런 부적격자들이 독립운동가, 애국지사가 묻힌 국립묘지에 나란히 잠들어 있다. “순국선열을 능멸하고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라는 분노가 터져 나온 이유다. 물론 어제오늘의 일은 아닌데, 이들을 국립묘지에서 분리하려면 법이 바뀌어야 한다. 그래서 현충일을 맞아 ‘국립묘지법 개정 촉구 시민대회’가 열린 것이다.


◆국군묘지서 출발, 그 태생적 한계

우리나라 국립묘지는 애초 국군묘지에서 출발했다. 1955년 국군묘지라는 이름으로 서울 동작동에 들어선 전사자 묘지가 바로 한국 최초의 국립묘지다. 국군묘지의 모델은 식민지 시대의 일본식 군 묘지였다. 어쩔 수 없는 시대적 한계였을 테다. 관련 연구들에 따르면, 당시 안장자들의 묘지 면적과 형태는 동일했으나 묘역을 분할하는 기준이 있었는데 바로 ‘계급’이었다. 묘비를 포함한 모표(墓標·무덤 앞 표석)의 크기도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두었다.


일본군 묘지가 모델 ‘태생적 한계’

묘역 구분부터 묘비 크기·모양까지

철저하게 계급에 따라 구분돼 있어


나라사랑·호국의 마음은 똑같은데

죽어서도 불평등한 차별 안타까워

해외선 면적·비석 크기 모두 평등

우리도 ‘묘지 평등주의’ 실현해야


독립지사·친일파 한 공간 묻혀 아이러니

별도 묘역 만들어 관리 방안 검토를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공식 재편된 건 1965년의 일이다. 이때 안장 대상자가 대폭 확대된다. 애국지사와 경찰관은 물론 향토예비군까지 포함되면서 기존의 군인 묘지, 전사자 묘지를 넘어 ‘국가유공자’ 묘지까지 아우르게 된다. 그 명칭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바뀐 2005년에는 소방공무원과 의사상자까지 안장 대상이 됐다.

현재 국립묘지 종류는 현충원 말고도 호국원, 민주묘지, 선열공원이 있다. 현충원은 서울과 대전에 2곳에 있는데 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기도 연천에서 제3 현충원 건립 사업이 추진 중이다. 호국원은 6·25와 베트남 전쟁 참전자에 대한 묘지 지원을 위해 설립됐다. 국가유공자와 장기복무 제대군인까지 안장 대상이다. 전국적으로 경기 이천, 경북 영천, 전북 임실, 경남 산청, 충북 괴산, 제주 등 6곳에 호국원이 있다.


◆죽어서도 차별받는 호국의 마음

국립묘지를 가로지르는 공간적 특징은 한 마디로 ‘죽음의 불평등성’이다. 나라 사랑, 호국의 마음은 누구도 다르지 않을 텐데, 죽어서도 차별받는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 앞서 말했듯 이는 국립묘지의 원형인 동작동 국군묘지에서부터 이미 내재화된 것이었다.

현충원에 가보면, 국무총리나 국회의장 등의 비석은 가장 위쪽 자리에서 받침돌과 비대석 위에 서 있다. 그 아래 장교들의 묘비가 있고, 더 밑에 일반 사병의 비석이 있다. 장교 묘비는 상단 양쪽 모서리가 없는 이른바 ‘귀접이’ 형태이고, 사병의 비석은 그냥 윗부분이 둥근 형태다. 지위와 계급에 따라 묘비의 위치도 다르고 형태도 다른 것이다. 특히 장군 묘역은 묘지 전체의 중심을 차지하면서 좌우에 장병을 거느린 모습이다. 묘역 구분과 묘비 크기가 장군, 장교, 사병에 따라 다른데, 이 자체가 위계와 특권을 구조화한 국립묘지의 근본적 한계를 상징한다.

그나마 1960년대 중반까지는 망자의 계급과 상관없이 묘의 면적은 동일하게 적용됐다. 이 평등성마저 무너진 게 1965년이다. 당시 원칙적으로 2평이어야 할 묘역은 이승만 대통령 안장 때 무려 500평으로 넓어졌다. 초법적 발상이자 위법적 조치였다. 이를 계기로 1970년대 들어서는 국립묘지 안의 차별과 불평등이 전방위적으로 확대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이는 묘역 구분, 묘의 면적, 묘의 형태, 상석과 같은 묘의 부속시설, 묘비의 크기와 재질, 안장 방법 등에서 두루 확인된다. 지금도 국립묘지에 가보면 1평의 사병 묘역과 8평의 장군 묘역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일단 한번 만들어진 묘지 경관은 쉽게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현충원은 사실상 반영구적인 불평등의 공간, 또 하나의 부끄러운 역사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프랑스의 묘지 평등주의

국립묘지에서 나타나는 ‘죽음의 차별’은 우리만의 유난스러운 현상이다. 미국 워싱턴에 있는 알링턴 국립묘지는 철저하게 평등하다. 대통령부터 사회 공헌자, 장군, 일등병까지 같은 공간, 같은 크기의 분묘에 사망 순서대로 나란히 안장돼 있다. 미국 전역 155곳의 국립묘지 모두가 이 같은 평등 정신을 구현한다.

프랑스 국립묘지는 파리의 ‘판테온’이 유명하다. 대통령이라 해서 무조건 안장되는 게 아니라 국민들로부터 공감대를 얻은 위인이 안치되는 것이 특징이다. 사망한 후 시간이 흘러 철저한 평가를 거칠 만큼 그 기준이 무척이나 까다롭다. 이곳 역시 모든 묘의 형태가 동일하다. 한편 독일 점령기 레지스탕스 활동 중 희생된 사람들을 위한 추모 공간은 별도로 마련돼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부산 남구 유엔기념공원도 죽음의 평등성이 잘 구현된 묘지로 꼽을 수 있다. 유엔군 전몰 용사 2300여 명이 영면해 있는데, 묘역은 나라별로 구분돼 있지만 개별 묘소의 면적과 묘석의 크기, 명패 등은 모두 동일하다.


◆위계 없는 통합이 필요하다

우리 국립묘지 안장 제도도 이제 신분이나 계급적 차별의 시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2001년부터 호국원이 생기고 봉안당 형태로 전환되면서 위계적 질서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중요한 것은 향후 국립묘지의 평등성 확보다. 국가보훈부가 이제부터 ‘묘지의 평등주의’ ‘죽음의 민주화’ 정신을 개혁의 큰 그림으로 잘 잡아나가야 한다.

이런 방향성 속에서 안장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지역별, 권역별 균형을 고려한 중장기적 계획이 나와야 한다. 전문가들은 우선 현충원과 호국원 등으로 나눠진 국립묘지 종류를 통폐합해 현충원으로 일원화하는 방안을 해법으로 내놓는다. 전체를 현충원으로 격상해 차별성이 사라지면 안장 대상자들이 거주지 인근의 국립묘지를 선택하는 일이 수월해질 수 있다.

독립유공자를 별도 구역에서 관리해 예우하는 방안도 중요하다. 국립묘지에 안장되지 못한 독립운동가 묘소가 전국에 무려 3천여 개다. 국권 회복을 위해 헌신한 독립유공자들은 최고의 예우를 받을 자격이 있다. 국립묘지 개혁은 국민적 공감대와 사회적 합의가 없으면 이뤄내기 힘들다. 승격된 국가보훈부의 역할이 막중하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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