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에선 아프지 마…” 장기 나눠주고 떠난 천사 ‘아영이’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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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생아 학대 사건 피해자 아영이
뇌손상 투병 끝에 28일 사망선고
장기 기증해 다른 생명 살리기로
아영이 부모 애끊는 편지 낭독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아이
다른 곳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길

‘아영이 사건’이 발생한 부산 동래구의 산부인과 내부. 부산일보DB ‘아영이 사건’이 발생한 부산 동래구의 산부인과 내부. 부산일보DB

“아영아, 우리 딸로 와 줘서 고마워. 작은 몸에서 힘들고 아팠던 기억은 잊고 이제 자유롭게 살아. 엄마, 아빠는 언제나 너와 함께할 거야.”

신생아 학대 사건(부산일보 2019년 11월 13일 자 10면 등 보도) 피해자 아영이의 아버지는 아영이의 장기기증이 이뤄지는 수술실에서 직접 적은 편지를 낭독했다. 편지 내용을 〈부산일보〉 취재진에게 설명하는 아영이 아버지의 목소리에서는 애써 울음을 참는 듯한 떨림이 느껴졌다.

부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발생한 신생아 학대 사건으로 그간 침대, 휠체어에만 의지한 채 살아야 했던 세 살배기 아영이가 결국 세상을 떠났다. 아영이 부모는 누운 채 세상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아영이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다면서 장기를 기증하기로 해 주변에 안타까움을 더했다.

아영이는 2019년 10월 태어난 지 닷새 만에 간호사에게 학대를 당했다. 간호사는 아영이의 다리를 한 손으로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리거나 바구니에 던지는 등 학대를 일삼았다. 또 아영이를 바닥에 떨어뜨려 두개골 골절상을 입혔다. 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은 아영이는 뇌세포가 계속 사라지는 등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치료를 이어왔다.

아영이 부모는 생명 유지에 필요한 일부 활동 이외에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아영이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폈다. 방광에 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내거나, 기계를 이용해 힘겹게 우유를 먹이는 일을 반복하면서도 아영이의 상태가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하나로 치료를 이어왔다.

하지만 결국 아영이는 지난 23일 오후 심정지 상태에 빠졌다. 심폐소생술, 약물 치료 등으로 심기능을 일부 회복했지만, 다시 상태가 악화돼 지난 28일 사망 판정을 받았다. 아영이 부모는 장기기증을 선택하고 장례 절차를 밟았다.

아영이 아버지는 “파괴되던 뇌세포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듯하다 지난 23일부터 맥박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회복 기미가 없어 119를 불러 병원으로 이동 중이었는데 갑자기 심정지가 왔다”면서 “겨우 기능을 회복하는 듯했지만 충격이 컸는지 뇌파검사에서 뇌파가 잡히지 않았다”고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영이 부모가 장기기증을 선택함에 따라 장기이식대상자 선정 등의 과정을 거쳐 4명에게 새 생명이 전달될 예정이다. 아영이 아버지는 "의사로부터 뇌사판정을 받았고 심장을 포함해 장기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을 때 수술을 진행해 아영이를 떠나보내기로 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아영이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계속 누워만 지냈다. 시신경, 청신경이 다 소실돼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살았다”면서 “장기이식이 이뤄지면 다른 곳에서 자유롭게 살 수 있고 아영이가 삶의 의미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은 지난달 18일 아영이를 학대한 간호사 A 씨에게 징역 6년 형을 확정했다. A 씨는 2019년 10월부산 동래구의 한 산부인과에서 아영이를 바닥에 떨어뜨려 의식 불명에 빠지게 한 혐의(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수사 과정에서 A 씨가 2019년 10~12월 20여 차례에 걸쳐 상습적으로 신생아실 아기 14명을 신체적으로 학대한 혐의도 드러났다. 함께 기소된 간호조무사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병원장은 벌금 3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아영이 아버지는 A 씨를 대상으로 민사재판을 진행 중이다.

아영이 아버지는 “A 씨는 법정에서 판사한테만 사과의 뜻을 밝혔을 뿐 아직까지도 따로 연락하거나 제대로 된 사죄의 뜻을 밝힌 적이 없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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