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알박기 텐트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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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박기’라는 말 만큼 자본주의 사회의 이면을 꼭 찍어 드러내 주는 표현도 드물다.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 기회주의적 꼼수가 모두 알박기라는 말속에 뒤섞여 뒹군다.

알박기를 하려면 먼저 ‘알’이 있어야 한다. 평범한 이 알을 땅에 박아 넣은 뒤 조만간 어떤 계기에 의해 황금알로 변하기를 기다린다. 예상이 적중해 이 알이 황금알이 되면 시쳇말로 이건 ‘완벽한 대박’이다. 한꺼번에 많은 이익을 얻는 데 이것만큼 확실한 것도 없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알은 바로 땅이다. 알박기라는 말이 부동산 업계에서 만들어진 연유다. 재개발이 예상되는 지역에 땅 일부를 사 놓은 뒤 사업자가 실제 개발을 하려고 할 때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값을 요구하면 된다. 사업자는 땅을 사지 않으면 개발을 할 수 없고, 설령 소송을 건다고 해도 금쪽같은 시간 낭비는 감수해야 한다. 대체로 소유주의 요구가 관철되는 방향으로 협상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

알박기라는 말이 자본주의는 물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에도 엄연히 있는 것을 보면 돈에 관한 한 사람의 욕심은 다르지 않은 모양이다. 알박기는 부동산 업계에서 유래했지만, 지금은 사회의 여러 분야로 퍼져 널리 인용되고 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제기되는 ‘알박기 인사’ 논란은 더 이상 새롭지도 않다. 이제는 ‘알박기 주차’에 이어 ‘알박기 판결’, ‘알박기 법안’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최근에는 ‘알박기 텐트’가 전국적인 화제가 되고 있다.

해수욕장이나 야영지, 공원 등에서 물이 있는 곳이나 나무 그늘 근처의 ‘명당’에 텐트를 쳐 놓고 장기간 자리를 독점하는 알박기 텐트가 국민적인 공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휴가철을 맞아 다른 피서객들의 원성이 빗발치자 급기야 정부가 법령 개정을 통해 대대적인 철거 조처를 내렸다.

이기적인 욕심과 기회주의적인 꼼수가 속성인 알박기 행위가 더 심해지면서 공용 시설까지 그 대상이 된 것이다. 자기 소유일지라도 도에 넘치는 일이라고 손가락질을 받을 판인데, 공용 시설까지 아무렇지도 않게 특정 개인이 독점했다니, 그 날강도 같은 배짱과 뻔뻔함에 어이가 없다. 사정이 이런 데도 담당 지자체는 단속 근거가 없다며 공용 시설이 얌체족의 개인 놀이터로 전락할 때까지 손을 놓고 있었다. 직무 유기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그사이 아무것도 모르는 애꿎은 이용객들만 바보가 됐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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