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갈대 / 신경림(19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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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시집 〈농무〉(1975) 중에서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표지일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뜻. 다시 말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은 깨어있다는 것으로서 존재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삶과 죽음을 궁리하고 숙고할수록 터져나오는 슬픔. 아, 우리는 소멸해가는 존재들이구나! 몸을 흔드는 ‘조용한 울음’은 제 존재에 대한 처연한 연민이자 이 우주 속에서 깨어있어 아름다운 존재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표현이다. 신경림 시인은 의식을 가진 인간존재의 궁극적 관심을 ‘갈대’라는 대상을 통해 이렇게 안타깝고 선연하게 그려내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약력: 1991년 〈부산일보〉 평론 등단

평론집 〈연민의 시학〉 등 8권

현재 경남대 국어교육과 교수

시전문계간지 〈신생〉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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