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콘크리트에 갇힌 초등학교, 산 조망권마저 잃나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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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주양초등 앞 28층 APT 추진
동서고가로 등 주변 구조물 빽빽
학교 저층은 낮에도 그늘져 어둑
유일한 엄광산 자연 풍경 막힐 판

5일 부산 사상구 주례동 주양초등학교 인근 전경. 현재 동서고가와 아파트 담벼락에 둘러싸인 이 학교는 맞은편으로 28층 152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이 추진돼 조망권 상실 위기에 처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5일 부산 사상구 주례동 주양초등학교 인근 전경. 현재 동서고가와 아파트 담벼락에 둘러싸인 이 학교는 맞은편으로 28층 152세대 규모의 아파트 건립이 추진돼 조망권 상실 위기에 처했다. 김종진 기자 kjj1761@

“아이가 귀하다면서 건강과 환경을 누릴 권리조차 못 지켜주니 어른 입장에서 낯이 서지 않습니다.”

동서고가로와 아파트 담벼락 등으로 둘러싸인 기형적인 형태의 부산의 한 초등학교 인근에 또 28층 아파트가 들어설 예정이다. 학교와 학부모들은 가뜩이나 열악한 교육환경이 더 추락할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서 향후 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5일 부산 사상구 주례동 주양초등학교. 이 학교 백점단 교장은 운동장을 쳐다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운동장에서 56m 거리에 28층 높이 A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기 때문이다. 동서고가로와 아파트 담벼락 등 시멘트 틈새로 학생들이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자연환경이 엄광산이었는데, A아파트가 건립되면 엄광산마저 대부분 가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시교육청은 이달 중 시교육청 교육환경보호위원회에서 주양초등 인근 A아파트 신축공사 심의를 진행한다고 5일 밝혔다. 주례동 도시철도 냉정역 인근에 추진되는 A아파트는 지상 28층 3개 동에 총 152세대 규모다. 시행사는 지난해 말 사상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는데, 교육환경보호위원회 심의를 통과해야 실제 허가를 받을 수 있다.

주양초등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더욱 악화될 위기다. 좁은 부지 탓에 운동장과 학교 건물은 육교로 연결되는 등 기형적인 아령형 구조인 데다가, 운동장 옆으로는 동서고가로가 지나간다. 방음벽 너머 동서고가로로 쌩쌩 달리는 차들과 학생들이 운동장에 가꾼 텃밭 간 거리는 10여 m에 불과하다. 학교 건물도 삼면이 인근 아파트 담벼락과 상가건물에 둘러싸여 있다. 이 탓에 1~3학년 교실은 한낮에도 불을 끄면 어두컴컴하다.

주양초등이 독특한 모습을 하게 된 것은 2006년 설립 당시 주변에 신축된 아파트 세대 수가 많지 않아 운동장과 학교 건물을 아우를 넓은 땅을 확보하기 어려웠고, 여러 아파트에서 부지를 조금씩 마련하느라 운동장과 건물이 떨어진 형태로 조성됐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학교 측은 아파트 건립으로 오후 시간 운동장에 그늘이 지고 학생들의 체육활동에 지장을 준다고 본다. 특히 열악한 교육환경이 더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양초등은 학생들에게 부족한 일조량을 확보시켜 주기 위해 매일 오전 10시 15~45분에 30분간 운동장에서 놀이시간을 갖는다.

주양초등 운영위원회는 지난 4월 20개 층으로 층수 조정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작성해 학부모 284가구 중 267가구(94%)로부터 동의서를 받았다. 또 학교 주변에 교육환경 보호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주양초등 운영위원장인 학부모 구소연 씨는 “가장 원하는 건 주변 아파트만큼 20층으로 층수를 줄이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시행사 측은 일조 피해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층수 조절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시행사 측은 한두 층을 낮추고 발전기금을 지원하겠다고 제안했으나 학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시행사는 또 학부모 요구대로 층수를 낮추면 사업성이 떨어진다며 현재 일조 영향은 관련법상 기준을 충족한다고 주장한다.

시행사가 의뢰해 작성한 교육환경평가서에서는 사업 시행이 일조에 영향을 주지만 부산시 학교 일조 규칙을 만족하고, 규칙상 일조를 만족하지 않는 곳은 사업 전에도 불만족 상태였다고 분석돼 있다. A아파트 건설 이후 운동장의 총 일조 시간(오전 8시~오후 4시)은 평균 1시간 26분 줄어 4시간 11분 확보되고, 학교 건물은 남향이 10분 38초 감소해 5시간 41분, 서향이 16분 52초 감소해 2시간 9분 확보된다고 분석했다.

시행사 측은 “무리하게 층수를 조절하면 사업성 악화로 파산할 수 있다”며 “사업 진행 시 통학 안전 등 최대한 피해가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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