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오염수' 문제 더 꼬는 무책임 정치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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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과학계 전문가 중론은 ‘문제 없다’ 불구
불안, 아이 미래 걱정하는 마음도 당연
간극 메워야 할 정치 되레 갈등 온상
방류 이후 대비 ‘책임 정치’ 전환할 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가 임박했지만, 국내 찬반 여론의 간극은 하늘과 땅 만큼 멀다. 해양 오염에 민감한 부산 민심은 더 혼란스럽다. 바다가 삶의 터전인 어업인들은 지나친 공포 조장으로 수산물 소비가 격감하는 게 불만이고, 어린 자식을 둔 지역의 3040 부모들은 아이들 미래가 걱정이다. 모두에게 더할 나위 없는 결론은 물론 ‘방류 중단’이다. 그러나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건 어업인들도, 부모들도 안다.

방류를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판단 근거가 돼야 할 전문가 집단의 의견은 비교적 명쾌하다. 11개국 전문가들을 모아 2년간 검토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국제 안전기준에 부합하다’고 결론 냈고, 국내 전문가들 의견도 같았다. 야당 시각에선 ‘일본 정부 맞춤형 용역’에 불과하지만, 원자력 분야 최고 권위 기구인 IAEA의 결론을 부정하면 과학으로 이 문제를 설득할 수 있는 곳은 지구 상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핵종처리시설(ALPS)’ ‘삼중수소’ 따위의 난해한 과학 용어로 점철된 ‘종이 쪼가리’ 몇 장에 어떻게 우리 운명을 맡기겠느냐는 생각이 충분히 들 법하다. 주변 상황이 판단을 도울 수 있다. 일단 오염수가 실제 위험하다면 자국 연근해에 이를 쏟아붓는 일본이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 그러나 후쿠시마 주변 어민들을 제외하고는 배출 지역에서 200km 떨어진 수도 도쿄 시민들 사이에도 별다른 동요는 감지되지 않는다.

이 또한 “자기네 핵 쓰레기를 모두가 공유하는 바다에 버리는 처지에 딴 소리가 나올 수 있겠느냐”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쿠로시오 난류를 탄 오염수가 우리 영해보다 훨씬 먼저 도착하는 미국과 캐나다 등이 IAEA 검증 결과를 신뢰하겠다는 입장을 보이는 건 어떤가? 물론 미국 국립해양연구소협회(NAML) 같은 곳은 ‘안전을 확신하기에는 데이터가 충분하지 않다’며 방류에 반대하지만, 학계 일부의 의견 이상으로 다뤄지진 않는다.

이들이 우리보다 안전 감수성이 떨어져서도, 우리보다 생선회를 덜 즐겨서는 더더욱 아닐 테다. 정부 차원에서 보자면 방류를 막을 현실적 방안이 없는 상황에서 안전성을 최대한 확보하는 수준에서 감내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을 터이고, 시민들로선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부 결정을 신뢰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야권이 주장하는 국제해양법 재판소 제소는 문재인 정부에서 검토했지만, 승소 가능성이 낮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안다. 유엔 총회 쟁점화 역시 어차피 그 판단의 근거를 산하기관인 IAEA가 제공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실효적인 선택지가 못 된다.

그럼에도 오염수 방류는 분명 우리의 책임과는 무관한 예상 밖 위해 요소다. IAEA의 ‘안전’ 결론은 최소 30년인 방류 기간 동안 일본의 계획대로 ‘100%’ 이뤄졌을 때를 전제로 한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그랬던 것처럼 중간에 어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오랜 기간 오염수를 방류했을 때 바다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선례도 없다. 일본이라 더 민감한 측면이 있지만, 일본이 아니더라도 불안하고 분노하는 마음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이런 심정에 공감하고,적절한 해법을 마련해 갈등을 봉합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지만, 우리 정치는 어김없이 서로의 ‘내로남불’을 들추며 민심을 무한갈등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IAEA 보고서는 깡통”이라는 민주당 정부가 2년 전 내부 검토에서 같은 결론을 낸 일을 길게 언급할 생각은 없다. 야당은 ‘반대당(opposition party)’이다. 반대하는 것으로 정책의 부작용을 미리 점검하고, 집권 세력에 의한 급격한 변화를 적절히 제어하는 게 역할이다. 외교 관계에서도 국내 반대 여론은 국익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별다른 근거도 없이 국제기구마저 일본의 ‘부역자’로 매도하는 야당의 공세는 너무 파괴적이다. 세계 주요국의 현실적 대응과 달리 우리만 감정과 명분에 치우쳐 외곩을 고수하는 건 아닌지, 무책임한 희망고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야당 공세를 방어하느라 IAEA 결론을 ‘지동설’에 비유하며 무오류의 진리인 것마냥 변호하는 여당 대응도 과도해 보이긴 마찬가지다.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 방한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 내부 모습은 오염수 방류에 대한 국내 여론이 얼마나 심각한지 일본과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충분히 각인시켰다고 본다. 이제는 여론을 발판 삼아 방류 시 가장 우려되는 불시 사고에 대한 대응, 해양방사능 분석체계와 수산물 방사능 감시체계 등을 꼼꼼하게 수립해 국민을 안심시키는 현실 정치로 전환해야 할 때다. ‘우리 정치가 늘 그렇지 뭐’하고 넘어가기엔 국론 분열과 민생 피해가 너무 심각하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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