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저녁에 / 김광섭(1905~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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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어둠 속에 사라진다.

이렇게 정다운

너 하나 나 하나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시집 〈겨울날〉(1975) 중에서


운명은 하늘로부터 뻗어오는가? 별 하나와 내가 눈이 마주친다는 것은 인연이 맺어진다는 뜻일 것이다. 운명의 여신이 잣는 실에 이끌려 마주친 두 눈길 속엔 놀람, 기쁨, 운명의 인력에 끝없이 당겨져 맞닥뜨리게 되었을 때, 두 사람은 비로소 이 세상의 빛나는 별들이 된다.

그러나 ‘밤이 깊을수록’ ‘별은 밝음 속으로’ ‘나는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인연의 쓸쓸한 결말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시인은 노래한다. 운명은 반드시 이 우주를 가르고, 삼생을 넘어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도 운명의 끈은 곧장 이어지고 팽팽해져 한 생애의 의미로 살아난다는 것을. 참으로 애틋하고 아련한 신비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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