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월동’ 여성 자활 대책 답보… 또 다른 성매매 온상 키운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개발 따라 ATM 철거 등 폐쇄 속도
종사자 관련 조례 있지만 예산 ‘0’
다른 업소로 유입 방지 취지 무색
대구 자갈마당 해체 전 여성 이주
지원 없는 폐쇄 땐 풍선효과 우려

부산 서구 충무동 3가 완월동 일대 개발이 가시화됐지만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은 요원하다. 11일 완월동 곳곳에 ‘철거 예정’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부산 서구 충무동 3가 완월동 일대 개발이 가시화됐지만 성매매 여성 자활 지원은 요원하다. 11일 완월동 곳곳에 ‘철거 예정’이란 글자가 적혀 있다. 김준현 기자 joon@

부산 주택사업공동위원회 조건부 승인(부산일보 7월 11일 자 8면 보도) 등 부산 서구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일대 개발이 가시화되고 있지만,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은 답보 상태다. 이대로면 성매매 여성이 다른 지역으로 유입되는 등 결국 반쪽짜리 폐쇄에 그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11일 오전 11시 부산 서구 충무동 3가. 이른바 ‘완월동’이라 불리는 동네 곳곳에는 빨간 래커로 ‘철거예정’이 적혀 있었다. 한때 성매매 업소였던 곳에는 손님을 맞이할 때 여성들이 앉는 흰색 의자가 덩그러니 있었다. 이미 철거가 끝난 곳에는 생활 쓰레기가 잔뜩 쌓여 악취를 풍겼다. 간혹 건물 내부 TV 소리만이 유일한 인기척일 뿐 동네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다. 40년 넘게 이곳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한 항옥점(76) 씨는 “요즘 아가씨(성매매 여성)들도 잘 안 보이고 방문하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며 “나도 올해를 끝으로 장사를 그만둘 예정이다”고 말했다.

최근 완월동 내 ATM 기기 2대가 철거됐다. (사)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 관계자는 “통상 성매매는 신분이 드러나는 신용카드 대신 현금 거래를 선호해 ATM 기기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ATM 기기 철거가 사실상 완월동 폐쇄가 눈앞까지 다가왔다는 신호인 셈이다.

그러나 완월동에 남아 있는 성매매 여성에 대한 자활 지원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2019년 부산시는 ‘성매매 집결지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립·자활지원’ 조례를 제정했지만 4년 가까이 예산을 편성한 적이 없다. 성매매 여성이 재차 다른 업소로 유입되는 걸 막기 위한 조례 취지도 자연히 퇴색했다.

이는 지자체가 적극적으로 자활 사업을 진행해 개발 전부터 성매매 여성을 빼낸 대구 성매매 집결지 ‘자갈마당’과 대조적이다. 대구 여성인권센터에 따르면, 대구는 ‘대구광역시 성매매 피해자 등의 자활지원 조례’ 바탕으로 2017년부터 생계비, 주거비 지원 등 성매매 여성 자활 사업을 진행했다. 2019년 자갈마당 개발이 급물살을 타기 전부터 성매매 여성이 성매매 집결지를 안전하게 벗어날 수 있도록 나선 것이다. 2017~2020년 동안 사업비 15억 원 들여 총 90명의 성매매 여성을 지원했다는 게 센터 관계자 설명이다.

대구 여성인권센터 장은희 대표는 “성매매 자체가 불법이다 보니 개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전부터 자활 사업을 통해 성매매 여성의 정착을 유도하고 있었다”며 “철거 전에 이미 성매매 여성 이주는 모두 완료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부산시는 구체적인 개발 일정이 잡히는 대로 완월동 성매매 여성을 돕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당장 완월동에 몇 명의 성매매 여성이 종사하는지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성매매 여성을 돕기 위한 예산도 4년째 편성되지 않은 만큼 개발에 맞춰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부산시 관계자는 “현재 60명의 성매매 여성이 완월동에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며 “건축 허가부터 실제 착공이나 철거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되기에 그사이 계획을 수립해 성매매 여성을 지원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성매매 여성 자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반쪽짜리 성매매 집결지 폐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제대로 된 지원 없이는 완월동이라는 공간만 사라질 뿐 그 안에 성매매 여성들은 별수 없이 다른 곳에서 성매매를 지속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살림 부설 완월동 기록연구소 정경숙 소장은 “해운대 609, 범전동 300번지 모두 개발 과정에서 취약계층인 성매매 여성은 방치됐다”며 “완월동 폐쇄가 가시화된 만큼 이제라도 부산시가 자활 지원 조례를 통해 성매매 여성들이 편안하게 빠져나올 수 있도록 조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