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착취의 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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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정희 (사)여성인권지원센터‘살림’ 상임대표

‘완월동’ 초고층 빌딩 재개발 속도
성매매·인신매매 ‘부끄러운’ 역사
여성들 앞세워 불법 영업 지속

성매매 영업이익 개발이익 전환
치유·회복 뒷전 건물주만 배 불려
착취 구조 지속 ‘완월동’의 본질

부산 ‘완월동’ 성매매 집결지 일대에 주상복합 초고층 빌딩이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했다. 기사가 보도되기 한참 전부터 성매매 업소로 사용되던 일부 건물이 철거되고 ‘철거 예정’이라는 붉은색 글씨로 성매매 업소 건물이 도배되었다. 최근에는 성 구매자가 현금을 인출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ATM기도 철거되었다. 인권유린의 상징이던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지는 것일까. 그러나 막대한 영업이익이 개발이익으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점에서, 완월동의 본질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기록과 증언에 따르면, 1970~80년대 완월동 포주는 “갈퀴로 돈을 긁어모았다”는 말을 들었다. 유곽의 형태로 남아 있던 일식 가옥은 신식 건물로 바뀌었고, 불법 증개축으로 방 수를 늘려 갔다. 70년대 완월동에는 수십 채의 건물이 구청 허락 없이 지어졌고, 건축허가조차 받지 못한 업소도 있었다. 그렇게 완월동은 80년대 가장 큰 규모의 성매매 집결지가 되었다. 섹스 관광으로 한국을 찾은 일본 남성은 주요한 성 구매자였다. 포주들이 여성의 몸을 팔아 부를 축적하는 동안에 다른 한쪽에서는 인신매매가 성행했다. 말 그대로 ‘부끄러운’ 역사다.


성매매 집결지에 강력한 단속이 이루어진 것은 2000년대 들어서였다. 2004년 성매매 방지법이 시행되자, 완월동 입구부터 여성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생존권을 보장하라”는 붉은 글씨의 팻말과 추운 겨울에도 얇은 옷을 입고 거리에 나앉은 여성들의 모습이 언론에 도배되었다. 그러나 여성들의 ‘생계유지’는 곧 포주들의 영업이익이었다. 여성들을 앞세워 단속을 유예시킨 포주와 알선자들은 여전히 불법 성매매 영업으로 이득을 취했다.

당시 성매매 집결지에 남아 있던 300명이 넘는 여성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가장 최하층의 삶을 살고 있었다. 10대 때부터 성매매에 유입되어 아무런 학력이나 경력을 쌓지 못한 채 몸이 병들었고, 선불금 채무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집이 없어 인근의 쪽방에서 월세를 얻어 어려운 생활을 유지하기도 했다. 성매매 집결지 자활지원사업이 시작되어 정부가 책임지고 여성들의 탈성매매와 전업을 도왔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 과정에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자활지원조례가 만들어진 것은 이와 같은 정부 기조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전국의 다른 지역에서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중요한 시정 과제가 되었고, 지자체가 책임지고 폐쇄를 추진하기도 했다. 전국적인 성매매 집결지 축소와 폐쇄의 움직임 속에, 완월동에서는 2019년 도시재생뉴딜을 통해 재개발을 하려는 움직임이 생겨났다. 그러나 시와 구청에서 추진하는 도시재생사업이 포주들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도시재생을 반대하고 나섰다. 집회를 열었고, 이번에도 성매매 여성들이 동원되었다. 여성들은 밤새 성 구매자에게 시달리고 잠도 못 잔 채로 아침부터 서구청 앞으로 나와 여성단체와 서부경찰서까지 행진을 이어 갔다.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의 폐쇄와 변화를 시도하고자 했던 도시재생사업은 국토부의 최종 승인을 남겨 두고 무산되었다. 성매매 영업은 계속되었고, 포주들은 한편으로는 개발이익을 주장하며 한편으로는 불법 성매매로 이득을 취해 왔다. 한반도 최초의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은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가 폐쇄되고 사라지는 동안에도 마지막까지 남아 한반도 최후의 집결지가 되어 가는 것처럼 보였다.

“성매매 집결지 폐쇄는 여성 인권 회복을 이루기 위한 가장 시급하고도 중요한 현안입니다.” 올해 1월, 파주시장은 ‘성매매 집결지 정비계획’을 새해 1호 결재로 처리하며 이와 같이 말했다. 성매매 방지법 시행이 20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까지도 성매매 집결지가 존재하고 있는 현실은 여전히 모순적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성매매 집결지를 이제 더 이상 ‘필요악’이나 ‘외화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성매매 집결지는 여성 인권의 현주소다. 이곳의 변화와 미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공공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국의 성매매 집결지 폐쇄 사례가 여실히 보여 준다.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의 의미를 치유와 회복, 인권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공공적 개입의 필요성을 설득하기 위한 기록 사업 예산은 부산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되었다. 그러나 도시계획에도 맞지 않아 특혜 의혹이 제기되고, 불법 성매매로 이득을 보아 온 포주와 건물주에게 막대한 이익이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초고층 건축물의 재개발 계획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초고층 빌딩의 수익은 누구의 이득으로 돌아갈까. 그곳에 있지만 주민조차 될 수 없던 이름 없는 여성들의 삶에 어떤 이득이 생길까. 아니면 불법 성매매 영업으로 이득을 취해 온 누군가가 또다시 개발이익을 독차지하는 걸까.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완월동’의 본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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