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헤밍웨이는 궁핍 속에서도 진실한 문장을 추구했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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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어니스트 헤밍웨이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 한길사 제공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 한길사 제공

<헤밍웨이 내가 사랑한 파리>는 헤밍웨이의 1920년대 프랑스 파리 생활 회고록이다. “이 모든 이야기는 우리가 무척 가난하고 무척 행복했던, 우리들의 젊은 날 파리의 모습이다.” 헤밍웨이는 스물둘이던 1921년부터 7년간 파리에 살았는데 이 글은 그의 노년에 파리 시절을 회고하면 쓴 것이다.

그는 파리의 가난한 동네에서 실내 화장실도 없고 더운 물도 나오지 않는 집에 살았다. 첫 번째 부인 해들리와 결혼한 직후였다. “우리는 결코 우리가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우리는 우리가 잘난 사람인 줄 알았으며, 우리는 얼마 되지 않는 돈으로도 잘 먹고 술도 잘 마셨으며, 잠도 잘 자고 함께 있어 따뜻했고 서로를 사랑했다.” 헤밍웨이는 ‘토론토 스타’의 해외특파원 기자 자격으로 파리에 체류한 터였다.

돈이 없던 그는 배고픔을 훌륭한 정신 수련법으로 생각했다. 점심을 굶는 대신 그 돈으로 뤽상부르미술관을 찾아 세잔 마네 모네의 작품을 감상했다. 그가 목표로 하는 것은 진실한 문장이었다. “걱정할 거 없어. 지금까지 죽 써온 글이니까 이제 곧 쓰게 될 거야. 정말로 진실한 문장 하나만 쓰면 돼. 그래,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진실하다고 생각되는 문장을 한번 써보는 거야.”

헤밍웨이가 교류한 예술가들도 나온다. <위대한 개츠비>의 스콧 피츠제럴드도 나오는데 한 번은 피츠제럴드가 성기 크기로 고민을 했다. 자기 부인이 그런 모양새로는 결코 어떠한 여자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없다고 했기 때문이란다. 헤밍웨이는 먼저 화장실에 가서 확인한 뒤 피츠제럴드를 루브르박물관에 데리고 가서 그리스 조각상을 감상하며 ‘결단코’라며 위로해줬다고 한다.

모더니즘 시 운동의 중심 인물인 에즈라 파운드에 대한 얘기도 나온다. “에즈라 파운드는 내가 아는 작가 중에서 가장 관대하고 사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파운드는 그가 신뢰하는 시인 화가 조각가 작가들에게 도움이 될 무언가를 하고 있었고, 누구에게라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는 모든 사람을 걱정했는데 특히 T. S. 엘리엇 걱정을 많이 했다. 런던의 한 은행에 근무하는 그가 시간이 여의치 않아 시작 활동을 제대로 못한다는 걱정이었다.

헤밍웨이는 파리의 많은 공간을 사랑했다. 특히 센강에서 사람들이 낚시하는 모습을 좋아했다. “도시 한복판에, 건전하게 낚시의 손맛도 제대로 즐기면서 가족에게 주려고 모샘치 튀김을 챙겨 집으로 가져가는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했다.”

젊은 헤밍웨이는 희로애락을 풍성하게 치렀다. 경마에 중독됐다가도 성실한 작가가 되기를 갈망하는 몽상가였다. 복싱을 가르치기도 하고, 사이클 경기를 즐기기도 했다. 이 책은 젊은 헤밍웨이의 파리 시절 문학노트이면서 첫 부인 해들리에 대해 평생 지녔던 사랑의 헌사라고 한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 평생 간직한 그의 궁극적 슬픔도 드러나 있다고 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로 주목받고, 그리고 한참 뒤 <노인과 바다>로 노벨문학상까지 받아 최고의 자리에 오른 그는 우울증에 시달리면서 글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전기충격 요법으로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고통 속에서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김보경 옮김/한길사/480쪽/2만 20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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