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플스토리] "덩치 작지만 국민 건강 지키는 '큰일' 합니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 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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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공항 검역탐지견 여름이
비글의 귀여운 외모로 승객 사랑 듬뿍
실상은 엄격한 훈련 거친 전문 탐지견
농축산 질병으로부터 나라 지키는 영웅들

검역탐지견 여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박영웅 탐지요원. 검역탐지견 여름이와 눈을 맞추고 있는 박영웅 탐지요원.

"여름이 참 잘생겼네요. 몇 살이지요?"

박영웅 탐지요원은 대답 대신 크게 웃었다. "얘는 여자아이입니다. 21년 5월 2일생이니까 두 살 2개월로 아직 세 살은 안 됐네요." 여름이가 참 잘 생겨서 가끔 오해받는데 어여쁜 숙녀란다. 여름이는 북이(6세 10개월) 오빠, 별이(6세 4개월) 오빠, 친구 하늘이(2세 3개월)와 함께 김해공항에서 검역탐지견으로 근무한다. 관등성명을 말할 수 있을까. 박 탐지요원의 입을 빌린다.

"농림축산검역본부 영남지역본부 축산물위생검역과 탐지계에 근무하는 검역탐지견 여름이입니다." 여름이를 비롯한 김해국제공항 검역탐지견 4마리는 모두 비글종이다. 귀여운 외모로 사랑받는 비글이 김해공항에서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니. 덩치가 큰 래브라도 리트리버나 스프링거 스패니얼도 아니고 애견인 사이에 ‘악마견’으로까지 불리는 비글이란다.

여름이 여름이
북이 북이
별이 별이

하늘이 하늘이

귀여운 외모가 오히려 강점

농림축산검역본부 영남지역본부 축산물위생검역과의 탐지계에는 공무견 4마리와 공무원 4명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사람과 탐지견이 일대일로 짝이 돼 근무한다. 탐지견의 근무 역시 오전 9시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하는 공무원의 일상과 똑같다. 다만 공항이라는 특성상 이른 새벽 시간대나 늦은 밤 시간대에 입국하는 비행기가 있어 당직 근무를 피할 수 없다.

"이 친구들이 하루 8시간 근무하면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사람이야 그렇게 근무하지만, 하루 종일 검역 대상 비행기가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에 잠시 일하고 대기하면서 쉽니다."

검역탐지견의 역할은 허가받지 않은 농축산물의 불법 반입을 막는 검역 업무. 근무지도 다양하다. 주로 공항이지만 경우에 따라 부산항국제여객터미널이나 양산에 있는 부산국제우체국, 용당세관 해상특송장에 가서도 일한다.

"비글이 중형견이지만 덩치가 그리 크지 않아 승객들에게 위협감을 덜 주는 것 같아요. 또 외모가 귀여워서 사람들이 친근하게 느끼기도 합니다." 김형진 탐지계장이 말했다. 김 계장은 탐지견 북이와 짝이다.

'제가 같이 일해 보니 비글은 천사견입니다. 너무 귀여워요. 누가 악마견이라고 하던가요. 적절한 산책과 보상만 주면 하루 종일 웃습니다.' 여름이와 일하는 박 요원도 자랑을 덧붙였다.

여름이가 김해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검역을 위해 박영웅 탐지요원과 대기하고 있다. 여름이가 김해공항 국제선 입국장에서 검역을 위해 박영웅 탐지요원과 대기하고 있다.

기다려 밖에 모르는 '바보'

"우리는 검역탐지 활동을 하는데 승객들이 '마약탐지견이다'라고 말하는 걸 들으면 살짝 속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 애들이 자기 일을 잘하고 있어 보람을 느낍니다." 박 요원이 말했다. 공항에서 승객들의 짐을 살피는 행위를 보면 마약을 찾는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여름이를 비롯한 김해공항 비글 사총사는 농축산물에 관한 검역을 한다. 승객들이 허가받지 않은 외국 농축산물을 승객들이 고의나 모르고 반입하는 것을 찾는 것이다.

"인천공항지역본부 검역탐지견 센터에서 생후 7주부터 12개월령까지 엄격한 훈련을 합니다. 이어 4주의 신견 탐지견 훈련을 마친 뒤 심사에 합격하면 현장에 투입되지요. 투입 이후에도 현장 운용 훈련과 보충훈련을 통해 근무지에 적응하도록 합니다. 보통 쉴 때도 놀이 형식의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엄격한 훈련을 거쳐 현장에 투입되는 검역탐지견이 사람을 물거나 지시에 따르지 않는 경우는 없다는 설명이다.

여름이는 ‘귀여운 실수’를 한 차례 했다. 김해공항에 온 첫날 배변 실수를 한 것이다. "사실 자기가 평소 지내던 곳을 떠나 낯선 곳으로 오면 아무리 훈련받았어도 실수할 수가 있습니다. 저희도 인지하고 있었던 상태라 그날은 휴지를 잔뜩 들고 다녔죠." 이후 김해공항 국제선 입국장에 잘 적응한 여름이는 지금은 전혀 그런 실수가 없다고 한다.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똑똑한 강아지라면 뭔가 개인기가 있지 않을까? "아까 보니 '기다려'는 잘하던데, 그럼 '빵'이나 '브이'도 할 수 있나요?" 박 탐지요원이 단호하게 대답한다. "탐지견은 '기다려' 이외의 명령어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오직 검역 임무에 충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알고 보니 여름이는 일밖에 모르는 '멋진 바보'였다.


탐지를 마친 여름이가 이상이 있는 물건을 발견한 뒤 앉아 자세를 취하고 있다. 훈련 받은 내용이다. 탐지를 마친 여름이가 이상이 있는 물건을 발견한 뒤 앉아 자세를 취하고 있다. 훈련 받은 내용이다.

탐지견이 적발한 물건에 자물쇠를 채워 검색 대기 중이다. 탐지견이 적발한 물건에 자물쇠를 채워 검색 대기 중이다.

휴가도 즐기는 순둥이지만이

여름이에게도 휴가가 있을까? 짝으로 일하는 탐지요원이 휴가일 때 탐지견도 업무에서 빠진다. 일종의 휴가인 셈이다. 그러나 산책과 훈련은 다른 탐지견과 함께 한다.

업무가 없는 날이나 일과가 끝난 탐지견은 영남 동물검역계류장 검역탐지견센터의 야외 견사 잔디밭에서 열심히 뛰논다. 어떤 사료를 먹는지도 물어봤다. "우리는 최고급 000사 제품을 먹입니다. 물도 정수한 물만 지급하고요." 탐지견이 먹는다는 사료 브랜드를 검색해 보니 kg당 1만 원이 훌쩍 넘는 최고급품이다. 왠지 여름이의 털이 윤기가 있고 곱더라니.

탐지견은 보통 1세부터 현장에 투입돼 8세까지 근무한 후 퇴역한다. 퇴역견은 주로 민간에 분양하거나 분양이 어려우면 영종도동물검역계류장에서 여생을 보낸다. 북이와 별이의 은퇴 날짜가 다가오니 관심이 있는 분은 살펴보시기를 바란다.

"강아지를 키우는 분들은 예쁘다고 쓰다듬거나 먹이를 주려고 합니다. 이런 행동은 탐지견의 업무 지장을 초래하거나 건강을 해칠 수 있으니 삼가면 좋겠습니다." 김 계장은 탐지견은 눈으로만 봐 달라고 했다.

인터뷰 중인 박영웅 탐지요원과 여름이. 인터뷰 중인 박영웅 탐지요원과 여름이.

사실 탐지견의 역할은 막중하다. 해외에서 허가받지 않고 들여오는 농축산물을 통해 아프리카돼지열병,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국내에 유입되면 그 피해액은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공항 일선에서 검역탐지견은 국민의 건강과 재산을 지키는 거룩한 일을 하고 있다.

"한 외국인이 열대 과일을 들여오다가 검역탐지견에게 적발됐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는 과일이라 하나만 가져가면 안 되냐고 물었지만, 예외 없이 모두 수거해 검역관에게 인계했습니다." 박 탐지요원이 검역탐지견과 일하며 겪은 일을 들려줬다. 여름이의 하루하루가 대한민국을 지키는 전선이다.

글·사진=이재희 기자 jaehee@ 김수빈 기자 suvely@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 김수빈 부산닷컴 기자 suvely@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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