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대통령 부인의 에코백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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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돈 스포츠라이프부장

윤 정부 1호 아킬레스건 불리던 김 여사
적극적 친환경 행보로 민심 얻나 했는데
참을 수 없었으면 조용히 다녀오셨어야

‘김건희 여사, 환경보호 메시지 담긴 에코백 들고 출국.’

지난 10일 윤석열 대통령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리투아니아로 출국하던 서울공항. 이날 통신사에서 출고한 현장 사진 중에는 김 여사 손에 들린 가방을 포착한 단독 컷이 여럿 있었다.

비행기 트랩 위에 선 김 여사의 손에는 사진 제목처럼 순백의 에코백이 들려 있었다. 가방에는 초록색 영문으로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Bye Bye Plastic Bags)’이라는 문구가 인쇄돼 있었다. 재활용이나 리사이클링 소재로 만들었음을 말하는 내용이다.

김 여사와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이라는 문구가 함께 뉴스에 등장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달 5일 김 여사는 서울의 한 대학에서 열린 플라스틱 절감 캠페인에 학생들과 함께 이 문구가 디자인된 티셔츠를 입고 등장했다.


김 여사와 동행한 반려견도 눈길을 끌었다. 새롬이라는 이름의 이 반려견은 지난해 말 윤 대통령 부부가 입양한 은퇴 안내견이라고 한다. 김 여사는 티셔츠에 새겨진 캠페인 문구 화자로 새롬이 그림을 새겨넣었다. 새롬이는 이후 SBS 프로그램 ‘TV 동물농장’에 깜짝 출연해 화제가 됐다. 이를 계기로 반려동물 입양, 특히 안내견 등 공적 역할을 맡은 사역견 입양에 대한 관심을 증대시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새롬이는 김 여사의 이번 순방 에코백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이제서야 자신의 길을 찾았구나!”

새롬이나 바이바이 플라스틱 백과 함께 등장하는 김 여사의 뉴스가 반가웠다. 여러 비판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적으로는 김 여사의 이런 행보를 다행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사실 김 여사 관련 논란은 윤석열 정부의 아킬레스건을 꼽으라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할 사항이 아니었던가.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부터 그랬다. 주가조작 가담 의혹부터 시작해 가볍지 않은 논란들이 쏟아져 나왔다.

숙명여대와 국민대학교 석박사 논문 표절 의혹과 일련의 허위 학력 및 이력 기재 의혹도 해당 학교 동문과 구성원들을 두 조각낸 것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학계를 휘몰아친 사건이다. 갈등은 논문 검증 결과 발표를 둘러싸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김 여사는 이 건으로 고개를 숙였다.

김 여사는 당시 기자회견에서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렸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나도 부끄러운 일이었다”며 사실상 의혹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대통령이 되는 경우에도 아내 역할에만 충실하겠다”고 다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남편이 대통령이 되고 난 후의 행보는 어땠나? 다들 알다시피 ‘아내 역할’과는 거리가 멀었다.

취임 한 달 만에 김해봉하마을을 공식 방문한 자리에 사적 인연이 있는 지인을 동행시켜 구설에 오른 김 여사는 각종 행사 참석 사진이 팬클럽을 통해 공개되며 이른바 ‘팬클럽 정치’를 한다는 논란에도 휩싸였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 집무실 사진까지 노출되며 안보 논란을 야기하기도 했다.

이른바 ‘조용한 내조’가 아닌 뜻밖의 요란한 광폭 행보에 윤 대통령의 성공을 바라는 여권 인사들의 충고도 쏟아졌다. 전여옥 전 의원조차 블로그에 글을 올려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의 최고 아킬레스건은 부인 ‘김건희 씨’였다는 것을 내내 기억해야 한다”고 따끔하게 한마디 남겼다.

이후에도 논란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최근엔 ‘에코백’으로 대변되는 친환경·동물권 보호 활동으로 어느 정도 방향을 잡은 것 같았다. 어차피 ‘아내 역할’만 기대하기 힘든 상황에서 방향이라도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다면 다행이지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리투아니아 명품 쇼핑 논란이 터졌다. 에코백을 앞세워 해외 순방에 동행, 외국 정상 배우자들에게까지 가방을 건네며 K에코백 전파에 진력하던 김 여사가 명품 숍에 들른 사실이 현지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본인과 직접 관련된 양평 고속도로 건에 대해 침묵하며 나선 순방길, 전쟁 같은 자국의 수해 상황을 듣고도 멈추지 못한 사적 욕망을 접하며 ‘다행이지 싶었다’는 마음을 거둔다. 참을 수 없었다면 숨기기라도 잘 했어야지. 잊을 만하면 불거지는 대통령 부인 논란을 마주하는 것도 지쳤다.

마음을 거뒀다지만, 출국 때 김 여사의 손에 들렸던 바이바이 플라스틱 에코백이 귀국 때에도 그대로인 걸 보고 또 여러 생각이 들었다. 많이 놀라기도 했고, 역시나 싶기도 했다. 살짝 무시당했다는 기분도 들었다.

앞서 언급한 전여옥 전 의원 글에는 이런 내용도 있었다. “요즘 김건희 씨 행보를 보면 ‘봐라, 난 대통령 부인이야’하는 게 보입니다.”


김희돈 기자 happy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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