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치수(治水)의 지혜를 다하라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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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예나 지금이나 치수는 곧 치세
지도자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

전국 수해 ‘보이는’ 물난리에다
‘보이지 않는’ 오염수 걱정 겹쳐

국민 생명과 안전 최우선 목표
국정 책임자들 초심 돌아볼 때

15일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를 미호강에서 범람한 흙탕물이 덮치는 모습. 이 침수 사고로 사망 14명 등 모두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15일 충북 오송 궁평2지하차도를 미호강에서 범람한 흙탕물이 덮치는 모습. 이 침수 사고로 사망 14명 등 모두 24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연합뉴스

요순시절 중국은 7년 가뭄이 들고 9년 홍수가 지는 땅이었다. 황하를 막고 있는 허난성(河南省) 용문산(龍門山)을 도끼로 갈라 물길을 낸 이가 우(禹)다. 홍수를 다스린 공으로 나라(夏)를 물려받았다. 지금으로부터 4000여 년 전, 신화의 시대라고 웃어넘길 일이 아니다. 사람들 뭇 목숨이 걸린 ‘치수(治水)’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 그 상징으로 부족함이 없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우 임금이 요순을 잇는 성군으로 추앙받는 것도 그런 이유다.

중국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나라 임금들도 물을 다스리는 데 지성을 다했다. 물은 너무 많아도, 너무 적어도 문제다. 고대로부터 가뭄과 홍수는 하늘의 경고로 여겨졌다. 이로부터 백성을 지키는 것이 곧 치세(治世)의 핵심이었다.

과학기술과 문명이 발달한 현대라고 해서 다른가. 그렇지 않다. 자연재해는 여전히 불가항력이고, 지금도 물난리는 계속되고 있으며, 사람은 속절없이 죽어 나가는 중이다. 참담한 재난 앞에서 인간은 미미하고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는 요즘이다.


눈에 보이는 수해만 물난리가 아니다.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는 더 큰 물난리의 씨앗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항시 주시해야 할 대상이다. 전자가 ‘수면 위’로 드러난 물난리라면, 후자는 ‘수면 아래’의 물 문제랄까. 오염수 문제는 눈에 보이지 않다 보니 ‘과학’이냐 아니냐, 갑론을박과 설왕설래가 만발한다.

과학은 흔히 인간의 인식과 정신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실재하는 사실이나 진리를 얻어 내는 학문으로 정의된다. 다른 시각도 있다. 과학의 목표는 진리를 얻는 게 아니라 그저 실험과 관찰의 결과를 통해 현 단계에서의 유용한 지식을 취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과학계 내부의 이런 철학적 견해 차이는 어쩌면 과학이 추구하는 가치중립 자체가 불가능한 일임을 방증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무리 가치중립을 표방한 연구라 하더라도 그 결과물이 향후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여기에서 자유로울 학문은 없는 것이다.

후쿠시마 오염수 문제 역시 순수한 과학의 영역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명백하다. 참과 거짓을 검증할 만한 축적된 실험 자료 없이, 취사 선택된 몇몇 데이터에만 의존하고 있어서다. 과학적 엄밀성을 뒷받침할 근거가 없다는 얘기다. 원전 폭발로 발생한 오염수의 해양 투기는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하는 일이다. 여기서 과학이 취해야 할 자세는 자만이 아니라 겸손이다.

오염수 문제가 ‘과학’일 수 없다는 것은 이미 과거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2021년 6월 야당이었던 국민의힘은 국회에서 일본의 후쿠시마 오염수 방출 결정을 규탄하면서 오염수 안전성 확보를 위한 정부 대책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국민의힘은 여당이 되면서 지금 정반대 입장으로 바뀐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를 옹호하려는 게 아니다. 문 정부 역시 일본의 오염수 방류를 암묵적으로 동조했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하다. 어쨌든 오염수 문제는 처음부터 과학이 아니라 정치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현 정부와 여당이 더 큰 지탄을 받는 건 당연하다. 당장 국정과 민생을 책임지고 있는 집권 세력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국민의 안위와 생명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윤석열 대통령의 행보는 국민 80% 이상이 오염수 방류를 반대하는 민심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듯하다. 윤 대통령은 12일 리투아니아에서 가진 한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오염수 방류 계획을 사실상 승인했다.

지금 정부는 왜 이렇게 일본 정부에 선의를 베푸는 것도 모자라 날개까지 달아 주려 애쓰는 걸까. 짐작되는 바가 없지 않다. 총선 승리와 집권 연장이라는 장대한 목표가 먼저 떠오른다. 한미일을 묶어 외교·안보 협력의 견고한 울타리를 치고 대신 중국·러시아는 대립의 대상으로 떠미는 이른바 ‘신냉전’ 구도에 올라타는 것이 보수층을 결집하고 표를 얻는 데 유리하다고 보는 모양이다. 그러려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서둘러 매조지는 게 급선무다.

정치세력이 집권을 꿈꾸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목표로 결코 비판할 일이 아니다. 문제는 주객의 전도다. 정치는 국민을 위한 것이고 국정 운영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 국정을 맡은 세력이 이를 망각하고 민생은 외면한 채 눈앞의 사사로운 이익에만 매몰돼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국민이 스스로를 구제해야 하는 각자도생의 원시적 사회로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눈에 보이는 물난리(수해)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물난리(오염수 방류)이든 이를 바라보는 국정 책임자의 눈은 철저히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맞춰져야 한다. 치수는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이다. 진정한 권력은 거기서 나온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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