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장정구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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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전설’은 이럴 때 쓰는 표현 같다. 통산전적 38승 4패 17KO. 장정구는 1983년 WBC 라이트 플라이급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 1988년 15차 방어에 성공한 뒤 은퇴했다. ‘국제복싱 명예의 전당’에 한국인 복서 최초로 입성했다. 유명우가 그 뒤를 이었을 뿐이다. 80년대를 주름잡던 두 선수가 맞대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성사되지는 않았다. 유명우는 한 인터뷰에서 “돈을 건다면 천부적인 싸움꾼 장정구한테 걸어야죠”라고 고개를 숙였다. 파마머리가 트레이드마크였다. 그 시절 남자가 파마하고 나타나면 다들 장정구 같다고 이야기했다.

장정구는 1963년 부산 아미동에서 출생했다. 비석마을로 알려진 아미동은 6·25 당시 피란 온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다. 장정구는 불우한 환경 때문에 어려서부터 남과 자주 싸웠다. 죽마고우이자 대학선수권 플라이급 우승자인 정석봉은 “장정구의 성공은 유년 시절 아미동 산동네를 하이에나처럼 어슬렁거리며 싸움판을 벌이다가 체득한 스트리트 파이터 특유의 승부사적 기질과 부산·경남지역의 우수한 아마추어 복서들을 상대하며 기량을 한 단계씩 끌어 올린 덕분이다”라고 진단했다. 장정구는 영화 ‘친구’의 실제 주인공들이 후배라고 했다.

장정구의 실화를 담은 영화 ‘산복도로’가 올 하반기에 공개 예정이라고 한다. ‘산복도로’는 서구 아미동 비석마을, 동구 매축지마을, 연제구 물만골뿐 아니라 사하구, 영도구, 중구, 해운대구 등 부산에서 촬영했다. 공동묘지 위 빈민촌에 살던 다섯 명의 소년이 세계 챔피언을 꿈꾸며 복싱을 시작하지만 장정구만 빼고 하나둘 새로운 꿈을 위해 나아가는 여정을 그렸다. 부산 출신 레전드의 이야기에 박형준 부산시장이 매축지마을의 촬영 현장을 찾아 격려할 정도로 지역의 기대 또한 높다.

지난 4월에는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실화를 담은 영화 ‘리바운드’가 극장가에 걸렸다. 단 6명의 선수와 신임 코치로 구성된 중앙고가 2012년 대한농구협회장기 전국대회에서 준우승한 영화보다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담았다. ‘리바운드’ 역시 부산에서 촬영해 ‘진짜 부산’을 볼 수 있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팀의 핵심 선수가 예고 없이 서울로 전학 간 것도 모두 팩트였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다 “부산에 남으면 나가리 된다”는 대사가 가슴에 와 박혔다. 장항준 감독은 “인재 부족과 누수는 취재 과정 중 지방에 위치한 농구팀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다”라고 말했다. 제2의 장정구는 영영 나오지 않는 것일까.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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