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MoCA, 오늘 만나는 미술] 기후변화 향한 ‘붉은 것’의 외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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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가이 나오 ‘샤리’

‘샤리’는 겨울에 70~80%의 바다가 얼음으로 뒤덮이는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 샤리군의 시레토코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 이 작품은 사진작가 이시카와 나오키가 샤리에서 함께 영화를 찍자고 요시가이 나오 감독을 초대하면서 시작됐다. 촬영은 이시카와 나오키가 맡았으며, 감독으로서는 단편 작업을 주로 해오던 요시가이 나오의 첫 장편 영화이기도 하다.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레토코반도는 겨울마다 오호츠크해에서 유빙이 떠내려온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2020년 겨울에는 눈이 거의 오지도 않고 유빙도 보이지 않는다. 요시가이는 이 변화 속 환경과 공생을 시도하기 위해 붉고 두터운 실로 엮은 거대한 털옷을 입고, 시레토코에서는 겪어본 적 없던 겨울을 ‘붉은 것’이 되어 샤리를 탐험한다.

토속신 혹은 땅의 정령과 같은 ‘붉은 것’의 출연은, 다큐멘터리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지표를 뛰어넘어 영화로 장르가 전환되는 ‘스위치’와 같은 역할을 한다.

샤리의 사람들은 시레토코 자연으로 삶을 지탱한다. 사슴을 잡아 고기를 구하고 농업과 어업으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들은 ‘시레토코의 자연을 원금으로 묻어놓고 그 이자로 먹고살아 간다’고 말한다. 하지만 2020년 샤리에는 눈이 그 어느 해보다 적게 내리고 40년 만에 최저 강설량을 기록한다. 이상기후의 파동이 시레토코의 삶을 서서히 흐릿하게 만든다. 자연이 주는 이자로 살아가는 시레토코 주민들은 이자가 지탱해 주고 있는 그들의 삶이 망가져 가고 있음을 직감한다.

시레토코의 대지는 흙을 덮어주지 못한 적은 눈으로 인해 깊숙한 곳까지 땅이 얼고 봄이 사라졌다. 연어가 잡히지 않고 벌레도 반으로 줄었다. 눈이 많이 오지 않으니 도토리가 차고 넘쳐 곰들은 배고프지 않아 동면하지 않는다. 동면하지 않는 곰이 있는 해. 2020년 2월 11일 드디어 샤리에 유빙이 떠내려왔다. 하지만 같은 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눈이 내렸다.

요시가이 감독은 하나의 쇼트에 순방향과 역방향으로 흐르는 바람·물·구름·얼음과 같은 자연과 지구의 순환을 설경의 적막감으로 목격하게 하며, 듣고 만질 수 있도록 한다. 원래라면 눈으로 뒤덮였을 오론코 바위 위로 ‘붉은 것’이 올라간다. 가죽을 벗자, 새하얀 등과 ‘붉은 것’이 공존한다. 반인반수의 존재가 오호츠크를 향해 소리친다. 붉은 털실을 토해낼 것 같은 울부짖음과 외침이 바다에 닿기를 바라며 소리친다. 해빙이 되지 못한 바닷물이 밀려든다.

내달 6일까지 진행되는 부산현대미술관의 ‘2023 시네미디어_영화의 기후:섬, 행성, 포스트콘택트존’ 전시에서는 100여 편의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지면에 소개된 ‘샤리’는 오는 8월 3일 목요일에 마지막으로 상영될 예정이다.

김가현 부산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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