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상실과 애도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영화평론가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상실을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
간결하고 담백하게 치유 다뤄
김애란 동명의 단편 소설이 원작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 컷. (주)디스테이션 제공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스틸 컷. (주)디스테이션 제공

갑작스러운 이별. 홀로 남은 당신은 무언가를 하지도 먹지도 울지도 하물며 차마 당신을 떠올리지도 못한 채 불 꺼진 집을 우두커니 지키고 있다. 어딘가로 훌훌 떠나버리면 좋으련만 떠날 곳조차 없다. 남겨진 당신은 고통을 느끼는 법도 잊어버린 듯 보인다. 남은 자는 상실의 심연 깊숙이 더 파고든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갑작스러운 사고로 남편을 잃은 ‘명지’와 같은 사고로 동생을 잃은 ‘지은’ 그리고 단짝 친구를 잃은 ‘해수’의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난 후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모두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을 찾지 못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세 사람의 이야기를 찬찬히 따르는 영화는 소중한 사람을 잃은 데서 오는 상실감, 슬픔, 절망, 좌절감 등의 감정을 여과 없이 그려낸다. 명지는 교사였던 남편이 물에 빠진 반 학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다. 혼자 남은 그녀는 절망 속에 허덕이다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폴란드 바르샤바로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남편 ‘도경’의 소식을 모르던 대학 동창 ‘현석’과 재회하고, 명지는 남편을 잃었다는 상실감에서 잠시나마 벗어난다. 명지는 마치 남편이 살아있는 것처럼 대하는 현석과 대화하며 모처럼 생기가 돈다.


한편 같은 사고로 친구인 ‘지용’과 이별한 해수는 곳곳에 남겨진 친구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슬픔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그런데 그것은 명지와 같은 절망이 아니다. 하나뿐인 동생을 잃고 몸이 마비된 지용의 누나 ‘지은’을 물심양면 도우며 친구와의 기억을 잊지 않으려 한다. 친구가 살아있을 때 했던 약속을 지키려 한다.

명지에게 남편과의 기억이 너무나 행복했기에 고통스럽다면, 해수는 이제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어 슬프고 서운한 감정이다. 두 사람의 고통은 다르지 않다. 다만 해수는 깊은 심연 속에서 벗어나 있다. 해수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큰 상실감을 느끼는 건 동생을 잃은 지은이다. 부모가 없는 지은과 지용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남매였기에 더욱 애틋했다. 지은은 동생을 떠나보내고 난 후 누군가를 원망할 수 없었으며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그녀는 동생이 세상이 떠났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던 것일까. 어느 날 이유 없이 몸에 마비가 오고, 제힘으로 걷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다.

영화에서 지은은 명지에게 편지를 보낼 때 나오는 내레이션 외에는 대사가 없다. 명지나 해수와 달리 정말 어디로도 갈 곳이 없는 지은은 삶을 놓아버린 듯 멍한 얼굴로 그저 견뎌내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명지는 남편의 기억이 남아 있는 땅에서 견딜 수 없어 떠나는 걸 선택한다면, 지은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몸이 망가지고 만 것이다. 이때 몸의 발병은 지은뿐 아니라 명지에게도 나타난다. 처음엔 복부 쪽에 생긴 작은 피부염이었다가 이후 상반신을 뒤덮을 정도로 부위가 점차 번진다. 말하지 못하는 내면의 상처는 점점 커지다 언젠가는 곪아 터지고 마는 것처럼 남겨진 사람들의 상처가 커지고 있음을 병으로 알리는 것이다.

영화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는 김애란 작가의 2017년 출간된 소설집 〈바깥은 여름〉에 수록된 동명의 단편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영화 또한 소설처럼 간결하고 담백하게 상실과 치유를 다룬다. 물론 슬픔에 허우적거리는 그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혀온다. 그럼에도 그 슬픔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사실, 애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배운다. 외면했을 때 그것은 잊는 게 아니라 더욱 나빠지는 법. 아프지만 그 아픔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나아진다는 것. 조금씩 나아간다는 걸 영화는 말하고 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