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신(神)은 어디에 있나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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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는 아우슈비츠 수감자에게 온갖 생체실험을 자행했다. 그 내용은 가스, 고압·감압, 독극물 실험과 인체 해부 등으로 요약되나 실상은 입에 담기조차 힘든 극악무도의 끝판이었다. 대상은 어린아이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는데, 생명을 구해야 하는 의료인들이 앞장섰다는 게 더 충격적이다. 대표적인 이름이 친위대 장교이자 내과 의사였던 요제프 멩겔레다. 특히 쌍둥이에 광적으로 집착한 그는 아이들의 몸을 잘라내고 이어 붙이는 엽기적 의료로 샴쌍둥이를 인위적으로 만든 뒤 생사 여부를 관찰했다고 한다. 순수 독일 혈통의 출생률을 높이라는 히틀러 지시에 대한 엉터리 유전학의 응답이었던 거다.

미국이 생체실험을 진행한 것도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남부에서 가난한 흑인 남성들을 매독 생체실험에 동원했고, 죄수들에게는 말라리아 감염과 고엽제 실험을 벌였다. 군인을 대상으로 한 가스 실험, 불우 청소년에 대한 방사능 실험, 정신지체아의 소아마비 실험도 있었다고 한다. 실험의 도구는 역시 취약 계층이었다. 2021년, 흑인 재소자와 원주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생체실험에 미국 중앙정보부(CIA)가 직접 관여했다는 증거가 나오기도 했다.

생체실험의 또 다른 악명은 일제 관동군 731부대의 몫이다. 증언에 따르면, 결코 나치에 뒤지지 않는 수준이었다. 2차 대전 때 일본은 이 비밀부대를 통해 생체실험을 진행해 생화학 무기 개발에 주력했다. 한국인, 중국인을 비롯한 전쟁 포로가 실험 재료였는데 ‘마루타’(통나무)라는 말은 여기서 나왔다. 그동안 일본은 구체적 증거가 없다며 실체를 부인해 왔다. 그러다 올해 5월 중국 헤이룽장성 안다현 인근에서 731부대의 지하 연구시설이 발견됐고, 얼마 전 부대 구성과 부대원 97명의 명단이 담긴 일본군 공식 문서가 처음으로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 부대 관련 문서들은 대부분 소각돼 그 전말을 밝히거나 책임자를 가려 줄 자료가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이번 문서는 관련자 행적 규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잔인하고 끔찍한 생체실험들이 모두 20세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금으로부터 채 100년도 떨어지지 않은 때에 인간의 인간에 대한 반인륜적 만행은 가파른 정점을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도 진실의 대부분은 어두운 역사의 장막 뒤편에 가려져 있을 뿐이다. 신은 정말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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