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2132명 그리고 0.78명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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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사회부 차장

2132명.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8년간 출산 기록은 있으나 출생 신고는 되지 않은 이른바 ‘유령 아기’의 숫자다. 지난달 감사원의 보건복지부 감사에서 처음 확인됐다.

감사원은 이 중 1%인 23명을 추려 아기의 생사를 확인했고, 이 과정에서 ‘수원 냉장고 영아시신’ 사건이 드러났다. 이후 전수조사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면서 실제 조사를 통해 전국 곳곳에서 아동 살해 또는 학대치사 사건이 하나 둘 밝혀지고 있다.

안타깝게도 아기를 살해한 가해자는 대부분 가족이었다. 아기를 낳은 젊은 미혼모 또는 미혼부부로, 이들은 ‘경제적 능력이 없어서’ 또는 ‘편견과 낙인이 두려워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답했다. 이들은 당연히 엄중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어쩐지 마음 한켠이 불편하다. 이들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기엔 가혹한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과연 이런 일을 막기 위해 온 힘을 다했는가.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두고 간 한 비혼모는 인터뷰에서 “무인도에 떨어진 기분”이라고 표현했다. 내 삶도 불확실한데 뱃속에 아기를 평생 책임져야 하는 상황, 주변에 누구도 따뜻한 지지를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출생신고를 하고 아기를 키워내겠다고 결정하는 것이 쉬울 리 만무하다. 어쩌면 평생 가난과 싸워야 하고, 정상 가정이 아니라는 날선 편견에도 맞서야 한다. 그래서 더 사회적 연대가, 국가의 지원이 절실했을지 모른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출생통보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의료기관이 출생사실을 지자체에 통보하는 방식으로 미출생신고를 막자는 취지다. 하지만 이것으로도 ‘병원 밖 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보다 앞서 이런 고민을 하고 대안을 적용한 국가들이 있다는 점이다. 산모가 익명으로 아기를 출산할 수 있도록 한 독일의 신뢰출산제, 더 나아가 결혼이라는 법적 계약 없이도 연인이 공동 생활을 하며 아이를 출산해 차별 없이 생활하며 법적 보호를 받는 프랑스의 ‘팍스(공공생활약정, PACS·Pacte Civil de Solidarite)’ 같은 법·제도를 우리도 적극 공론화해 도입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2015년 시행된 독일의 신뢰출산제는 단순히 출산기록과 같은 형식적인 문제가 중요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 하면 위기 상황의 산모가 고립된 상태로 출산을 하지 않도록 할지, 그래서 산모와 아기의 생명이 위태롭지 않도록 할지를 중점에 둔다. 1999년 시행된 프랑스의 ‘팍스’는 우려와 달리, 결과적으로 출산율이 증가하는 효과를 거뒀다. 프랑스는 지난해 유럽연합 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1.89명의 합계출산율을 기록했다.

지난해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78로 내려앉았다. 아이 낳아 키우기 좋은 도시, 국가를 만들겠다며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지원금도 늘리고 있다. 하지만 법망 밖에 방치된 출생 미신고 아기들과 미혼모, 미혼부부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구호다. 매년 출산율 최저치를 갱신하고 있는 나라에서, 태어났지만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기들이 있다는 건 심각한 모순이다. 적어도 이 땅에 태어난 아기들이라면 온전히 피어날 수 있도록 제대로 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김경희 기자 mis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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