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성악가 세계적 수준…아시아 최고 오페라하우스 희망”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정명훈 부산시립공연장 예술감독

“오페라하우스·국제아트센터
큰 방향 잡고 포인트 짚을 것
하고 싶은 일은 아동 음악 교육”

“한국전쟁 때 부산에서 태어나
70년 만에 부산 돌아온 것 운명”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위촉패를 받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위촉패를 받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어떤 일을 제대로 끝까지 해내려면 결과도 중요하지만 내 (가슴을 가리키며) 속에 사랑(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나라, 태어난 도시(부산), 사랑이 있기 때문에 결과도 괜찮을 거라고 믿습니다. 부산오페라하우스가 정착하는 데는 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 (3년 계약의) 저로선 결과를 보기 힘든 일이지만 좋은 씨앗을 심고자 합니다. 예술감독으로서 큰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방향이 좋고, 어떤 게 더 중요하다는 포인트를 짚어주는 일을 해야 할 겁니다.”

25일 오전 11시 부산시청 1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부산오페라하우스·부산국제아트센터 예술감독 위촉식’에 참석한 정명훈 예술감독이 들려준 말이다. 부족한 이야기는 위촉식 직후 일본으로 출국하는 정 예술감독과 함께 김해국제공항으로 가서 국제선 청사에서 추가로 단독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묶은 부산시립공연장 예술감독직을 수락하면서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릴 적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제가 1953년에 태어났는데 그때는 전쟁으로 서울에서 남쪽으로 피난 왔을 때입니다. 우리 어머니가 짐은 다 놔두고 오면서도 꼭 한 가지를 챙기셨는데 조그마한 피아노입니다. 트럭까지 구해서 피아노를 부산으로 가져왔습니다. 제 생각엔 당시 피아노를 부산에 갖고 오지 않았다면 제 삶의 스토리가 달라졌을 겁니다.”

이후 8살 때 그는 미국으로 떠났다. 당시 어머니 생각은 가장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미국이라고 생각했었단다. 그렇게 한국을 떠나갔고, 미국 현지에서 식당을 시작한 어머니 뒷받침으로 교육받았으며, 유럽에서 지휘자로 40여 년을 활동했다. 그리고 70년 만에 다시 부산으로 돌아온 셈이다.

“이제 죽기 전에 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지금까지 경험하고 생각한 것들을 어떻게 돌려주느냐가 아닐까요. 우리가 한 번 살면서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거든요. 그런 기회가 생겨야 해요. 부산서 처음 제안했을 땐 저도 고사했어요. 서른여섯 나이로 바스티유 오페라(현 파리국립오페라) 음악감독으로 취임할 때만 해도 경험은 없어도 젊었거든요. 에너지가 넘칠 때였죠. 하지만 지금은 경험은 많아도 그때만큼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망설여졌어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위촉패를 받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위촉패를 받고 기자간담회를 갖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그래도 부산시에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설득했고, 긴가민가하는 마음일 때 정 예술감독은 박형준 부산시장을 직접 만나서 비전을 확인하고 싶었단다. 그리고 박 시장과 깊은 대화를 나누면서 확신하게 됐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잘만 하면 특별한 오페라하우스가 만들어질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페라를 만들고 오페라하우스를 운영하려면 성악가·오케스트라·합창단이 중요한데, 우리나라 성악가 수준은 세계 최고라 할 만합니다. 지금 당장 중국·일본과 비교하더라도 우리 성악가들 수준은 월등합니다. 외국 성악가도 초대하겠지만,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성악가들을 부산으로 불러 모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다음은 오케스트라인데 그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것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다음은 합창인데 이것도 성악만큼이나 우리나라 수준이 높습니다. 부산에서 특별히 잘하는 오페라가 생기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 생각이 들자 놓치기가 아까웠어요. 서울에서도 못한 일을 부산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고, 아시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위촉식에서 박 시장도 “가장 중요한 것은 정명훈 예술감독이 기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시가 간섭을 하지 않고 지원 역할을 열심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예술감독의 자율성과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일을 묻자 정 예술감독은 어린이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강조했다. 그는 “부산에서 가장 부족한 부분이 청중이 아닐까 생각한다”며 “청중 개발이 가장 큰 숙제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페라를 포함한 클래식 음악의 청중을 키우는 겁니다. 예술감독인 저는 큰 그림을 그리는 일인 만큼 부산시에 요청했습니다. 음악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시민 프로그램, 특히 어린이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잘할 수 있는 기획자를 꼭 뽑아 달라고 말입니다. 가능하다면 저는 부산국제아트센터에선 아이들과 가족을 위한 음악 교육 프로그램만큼은 세계 최고로 잘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베네수엘라가 40여 년 전 당시 사회 문제로 대두된 청소년 범죄율을 줄이기 위해 ‘엘 시스테마’라는 공공 음악교육 제도를 출범시켰던 것처럼요.”

정 예술감독은 오페라하우스 운영 방침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흔히 말하는 좋은 오페라, 잘하는 오페라 공연은 사실 돈만 주면 외국 어디서든 데려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가끔은 외국의 유명한 오페라단도 초청하겠지만, 일상에서 시민들이 오페라를 가까이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오페라하우스 역시 일반인들은 쉽게 가기 힘든 곳이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페라하우스를 처음 시작할 때 ‘오픈하우스’처럼 재밌게 오페라를 배우는 기회를 많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비싼 돈을 들이지 않고도 볼 수 있는 오페라, 너무 어렵지 않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오페라하우스를 만들어 시민들이 쉽게 드나들면 좋겠습니다. 그런 기획자를 찾아야 합니다. 또 한국 사람들이 이탈리아 오페라를 좋아하는 만큼 이탈리아와 협업으로 제작하는 오페라를 만들어 볼까 싶습니다.”

시즌제 단원 등과 관련해서도 정 예술감독은 “당장은 어렵겠지만, 제대로 된 오케스트라를 꾸리는 데는 향후 10년을 내다보고 있다”면서 “부산시가 좋은 땅을 제공하고, 저는 좋은 씨앗을 뿌릴 책무가 있다”고 언급했다. 부산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정 예술감독은 거듭 강조했다. “음악가가 된 것도 100% 운명이라고 생각하지만, 태어난 지 70년 만에 부산으로 돌아온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부산)에서 태어났고, 기회가 생겼고, 일흔 살이 되어서 하나의 큰 원을 완성하는 셈이니까요.”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으로부터 위촉패를 받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부산오페라하우스와 부산국제아트센터를 총괄할 초대 예술감독에 위촉된 정명훈 씨가 25일 부산시청에서 박형준 부산시장으로부터 위촉패를 받고 있다. 정대현 기자 jhyun@

한편 정 예술감독은 2025년 상반기 개관하는 부산국제아트센터와 2026년 하반기 개관 예정인 부산오페라하우스 개관 공연을 비롯한 시즌 공연과 음악제 구성을 총괄한다. 현재 2025년 개관하는 부산국제아트센터 개관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며, 페스티벌 기간에는 부산에 상주할 예정이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