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바비인형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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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에이바 맥스가 2018년 발표한 ‘Not your barbie girl’(나 너의 바비인형이 아니야)은 1997년 덴마크 그룹 아쿠아가 “넌 내 머리를 빗겨 줄 수도 있고, 어디서든 옷을 벗길 수도 있어”라는 유로댄스 곡 ‘Barbie girl(바비 걸)’을 정반대로 해석해 리메이크 한 노래다. 파워풀한 창법의 에이바 맥스는 “난 너의 바비가 아니야/ 난 내 세상에서 살고 있어/ 당신은 날 만질 수 없어요/ 나의 주인은 나예요/ 나는 당신이 쉽게 가질 수 없는 존재예요”라면서 사랑 앞에 수줍어하는 여성상에서 벗어나고, 사회적인 틀에 강요당하지 말라고 열창했다.

노래 이름이기도 한 바비인형은 커다란 눈에 금발, 볼록한 가슴과 늘씬한 다리를 가진 모습으로 오랫동안 미인의 대명사였다. 오죽했으면 ‘바비인형 닮았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이다. 1959년 미국 LA의 루스와 엘리엇 핸들러 부부가 딸 바바라가 종이로 된 아기 인형으로 엄마 놀이를 하는 모습을 보고 고안한 인형 장난감이다. 흑백의 줄무늬 수영복을 입은 1호 바비인형은 첫해에만 30만 개가 팔렸을 정도다. 핸들러 부부는 소녀들이 인형 놀이를 통해 자신의 미래 모습, 새로운 여성상을 상상하기 바랐다고 한다. 여성의 역할은 출산·육아에 한정되지 않으며,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게 바비의 캐치프레이즈였다.

하지만, 바비는 외모 중심의 왜곡된 미의식 등 그릇된 여성상을 생산한다는 비판과 용기와 능력, 자신감을 가진 여성 모습을 담아내 소녀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었다는 평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시대적 조류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캐릭터로 변화했다. 패션모델로 데뷔한 뒤, 외과 의사, 군인, 발레리나, 우주인, 올림픽 선수, 사업가, 대선 후보에 이어, 보청기나 의족·휠체어를 사용하는 바비까지 등장했다.

그런 바비인형을 소재로 한 영화 ‘바비(주연·제작 마고 로비)’가 최근 개봉됐다. 영화에서는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여자가 최고인 세상’ 바비랜드를 떠나 현실 세계로 나온 바비가 겪는 웃지 못할 해프닝을 담았다. 인간 세상에 발을 딛자마자 남자들의 성추행과 가부장제 등 부조리한 현실을 겪는다. 바비랜드로 돌아와 변화를 일으킨 뒤 “만들어진 무언가로 남고 싶지 않아요. 나의 정체성은 내가 정해요”라는 바비의 대사는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미래 여성상을 위한 의미를 담았다는 바비인형이 전 세계 소녀들에 안긴 지 벌써 64년. 과연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역할과 인식, 환경이 얼마나 개선됐는지는 미지수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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