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사랑가(歌) · 1/이경록(1948~1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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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며칠 전 팔백 리 밖 아화(阿火) 안말에서 띄워보낸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오늘 아침 동남풍과 함께 닿아 내 몸의 숨구멍을 타고 흘러 들어오다. 흘러 들어와 그 말의 숨결이 내 심장의 피 덥히며 온몸을 흐르다. 팔백 리 밖 사람아, 그대 사랑한다는 말의 하늘길로 또 내 말을 보낸다.

오늘밤 금강(錦江)이나 추풍령 상공에서 내 말은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소리치며 떠 헤매 가리라. 잠 못 들고 뒤척이는 이 나라의 사랑하는 마음들아, 한 마디씩 씨 받아 팔 괴고 잠들어라.

-사화집 〈자유시 8인 동인 시집〉(1977) 중에서


아, 하늘길로 전하고 받는 사랑의 말은 도대체 어떤 빛깔과 향기를 지녔으려나? 얼마나 사랑이 지극하고 사무쳤으면 ‘팔백 리’ 너머에서 ‘내 몸의 숨구멍’으로 그 소리는 흘러들어 내 심장을 뛰게 하고, 내 영혼을 하늘로 뜨게 하나?

간절하고 간절하여라. 요절 시인 이경록은 죽음에 임박하여 세상에 대한 사랑과 자신의 존재에 대한 애처로움에 영적 존재가 되어 ‘금강이나 추풍령 상공’에 떠서 부르짖는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 열렬하고 절실한 마음을 지상의 독자들도 한 마디씩 씨 받아 잠드나니, 세상은 참으로 깊고도 깊은 심연이다. 심연 속에 한 줄기 사랑의 말들이 피어올라 외롭게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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