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도시’ 부산 여행…바다만 보고 떠난다면 반도 못 봤다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커피 역사·기구 전시 2곳의 커피박물관
바리스타 세계챔피언 배출 커피숍부터
해발 380m 세계 최고 높이 커피매장도
해안가 카페에선 바다전망 눈맛도 일품

부산 기장군 칠암리 베이커리 카페 '칠암사계'의 루프톱.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 야외에서 이흥용 제과명인의 빵과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부산 기장군 칠암리 베이커리 카페 '칠암사계'의 루프톱.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가 어우러진 야외에서 이흥용 제과명인의 빵과 커피를 맛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커피를 처음 마신 인물은 고종으로 알려져 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서 생활하며 커피를 접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 10여 년 앞서 커피를 맛본 인물이 부산에 있었다. 부산해관 감리서 직원 민건호가 쓴 <해은일록>의 1884년 7월 27일 자에는 ‘갑비차(커피)를 대접받았다’는 내용이 나온다. 서울보다 일찍 커피 향이 흐르고, 조선 왕보다 먼저 커피 맛을 본 부산은 ‘커피도시’라 불러 마땅하다. 올여름 부산에서 즐길거리를 찾고 있다면, 커피 여행은 어떨까.

■ 커피, 넓고 깊게 만나려면

부산에는 커피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커피박물관이 두 군데 있다. 지난해 동구 수정동 옛 부산진역사 시민마당에 들어선 ‘국제커피박물관’은 유럽에서 건너온 커피 관련 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전시물은 한 시민이 40년간 모아 기증했다.

‘커피박물관’ 간판을 따라 입구로 들어서면 은은한 커피 향이 공간 전체를 감싼다. 오른쪽 전시실에는 커피를 내리는 순서에 맞춰 커피 원두를 볶는 기구인 ‘로스터’, 볶은 원두를 분쇄하는 ‘그라인더·밀’, 분쇄한 커피를 추출하는 기구 등이 시대별로 전시 중이다.

로스터는 팬·라운드·드럼·실린더 등 스타일별로 진열돼 구조적인 차이를 살펴볼 수 있다. 그라인더·밀 역시 분쇄 방식에 따라 유형이 나뉜다. 기구 외관의 다채로운 무늬와 장식에서 고풍스러운 품격이 느껴진다.

커피 추출 기구는 종류가 한층 다양하다. 달임식(터키시·보일링), 우림식(하이드로스태틱·프렌치프레스), 여과식(비긴·네오폴리탄·퍼컬레이터·사이펀), 가압식(팟·머신) 등 추출 방식이 여러가지라는 점도 놀랍다. 전시품 중에서 간간이 종이광고도 눈에 띄는데, 바로 옆에 똑같은 실물 커피 기구가 전시돼 있어 흥미롭다.

커피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오는 9~12월 열리는 커피아카데미에 참여해 볼 만하다. 부산대 평생교육원에서 다음 달 1일부터 수강생을 모집해, 국제커피박물관 교육체험실에서 다양한 교육을 진행한다.

국제커피박물관의 전시실. 옛 유럽의 다양한 커피 기구를 만나볼 수 있다. 국제커피박물관의 전시실. 옛 유럽의 다양한 커피 기구를 만나볼 수 있다.
보일링 방식의 커피 추출 기구. 종이광고와 함께 똑같은 실물 제품이 전시 중이다. 보일링 방식의 커피 추출 기구. 종이광고와 함께 똑같은 실물 제품이 전시 중이다.

전포카페거리에 있는 ‘부산커피박물관’은 더 오랜 역사를 지녔다. 2018년 도시철도 2호선 전포역 앞에 문을 열었다가 최근 인근으로 임시 이전해 명맥을 이어 가고 있다. 김동규 박물관장이 수집한 커피 관련 물건은 모두 2000여 점. 개인 소장품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중 일부만 전시 중이다. 크게 로스터·그라인더·추출기로 나눠 주요 기구들을 살펴볼 수 있다.

임시 공간인 만큼 규모는 단출하지만, 구석구석 흥미로운 전시물이 눈에 띈다. 원두를 볶기 전 생두도 살펴볼 수 있고, 볶는 정도(약·중·강배전)에 따라 빛깔이 다른 원두도 비교해 볼 수 있다.

벽면 높이 걸린 흑백 사진도 예사롭지 않다. 땅에 심은 원두에서 싹이 자라는 모습, 커피나무 모종과 탐스러운 커피 열매 등 쉽게 접할 수 없는 장면들이다.

한쪽에 놓인 후지로얄의 오래된 대형 그라인더(밀)는 제품 홍보를 위해 전시용으로 쓰던 것이다. 제품 홍보용 옛날 책자(복사본)들도 희귀하다. 오랜 기간 광범위하게 수집해 온 관장의 집념이 엿보인다. 단체 방문의 경우 미리 예약하면 좀 더 상세한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박물관을 방문한 뒤 주변 카페를 들르면 커피가 새롭게 보인다. 10여 년 전 서면 철물공구상가 사이에 하나둘씩 카페가 들어서며 시작된 전포카페거리는 전포역을 중심으로 전포사잇길, 전리단길 등지로 점차 확장 중이다. 수십 개 카페 중 고르는 맛도 있다.

부산커피박물관에 전시 중인 그라인더. 위쪽이 고급 제품이다. 부산커피박물관에 전시 중인 그라인더. 위쪽이 고급 제품이다.
후지로얄사의 대형 그라인더. 실제로 사용하진 않고 전시·홍보용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후지로얄사의 대형 그라인더. 실제로 사용하진 않고 전시·홍보용으로 제작된 제품이다.
커피 원두에서 싹이 자라는 모습. 커피 원두에서 싹이 자라는 모습.

■ 커피, 향에 추억을 더하려면

전포카페거리를 비롯해 온천천 카페거리, 바다가 보이는 영도와 기장 등 부산은 지역마다 특색 있는 카페들이 커피 향을 뿜어내고 있다. 커피도시의 대표 카페로 소개할 만한 곳도 여럿이다.

세계챔피언 전주연 바리스타를 배출한 모모스커피는 부산을 넘어 전국구 커피 핫플레이스다. 본점은 도시철도 1호선 온천장역 인근 빌딩숲 사이에 ‘작은 공원’처럼 자리한다. 수풀이 우거진 대문을 지나면, 안으로 들어갈수록 넓고 깊은 마당이 펼쳐진다. 2층 본채와 단층 별채, 야외 테이블까지 자리마다 다채로운 풍경이 매력적이다.

입구에 내걸린 직원 현황판이 모모스커피의 역사와 규모를 짐작케 한다. 2007년 시작 때부터 함께한 전주연(콩스) 바리스타를 비롯해, 30여 명의 직원들이 소개돼 있다. 매일 다른 향미를 선물하는 ‘오늘의 커피’는 마니아는 물론 일반인도 두루 즐기기 좋다. 오늘의 바리스타가 정성스레 내린 커피 한 잔. 그 곁에는 향미를 설명해 주는 작은 쪽지가 놓여 있다. 커피의 세계를 알리고 나누려는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커피 초보자라면 다양한 샘플 커피를 시향해 본 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원두를 구입해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모모스커피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초록의 정원이 펼쳐진다. 모모스커피 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초록의 정원이 펼쳐진다.
모모스커피 본채에 마련된 시향용 커피. 모모스커피 본채에 마련된 시향용 커피.

남해와 동해가 만나는 부산은 긴 해안선 만큼이나 바다를 배경으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카페가 많다. 그중 ‘칠암사계’는 베이커리 뮤지엄이라고 공식 소개할 정도로 특색 있는 바다전망 카페다. 이흥용 제과명장이 2년 전 기장군 칠암리 어촌마을에 문을 열었는데, 커피와 함께 명장의 손길이 담긴 다양한 빵을 맛볼 수 있다.

주차장에 접한 2층 입구로 들어서면 난간 아래로 1층 ‘베이커리 갤러리’ 공간이 한눈에 들어온다. 달음산·칠암붕장어·칠암돌만주 등 지역명이 들어간 재미난 모양의 다양한 빵이 커피 향과 어우러진다.

카페 공간 자체도 매력적이다. 칠암의 사계절을 느낄 수 있도록 부산 출신 고성호 건축가가 설계했다. 1~3층 어느 자리에서든 막힘 없이 바다, 정원, 달음산 능선 등 다채로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다. 좀 더 바다를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면 3층 야외 루프톱도 좋다. 바다 내음과 파도 소리는 깊은 인상을 더한다.

칠암사계 1층 베이커리 갤러리. 커피와 함께 다양한 맛과 모양의 빵들을 맛볼 수 있다. 칠암사계 1층 베이커리 갤러리. 커피와 함께 다양한 맛과 모양의 빵들을 맛볼 수 있다.
부산 출신 고성호 건축가가 설계한 칠암사계 건물. 부산 출신 고성호 건축가가 설계한 칠암사계 건물.

부산에는 한 잔에 3만 원이 넘는 커피도 있다. 가격만 보면 혀를 내두를 법하지만 해발 380m 높이에서 맛보는 커피라면 마음이 흔들릴 만하다. 해운대해수욕장이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엘시티 부산엑스더스카이 전망대에는 전 세계 스타벅스 중 가장 높은 매장이 있다. 전망대 입장료가 2만 7000원(성인 정가 기준)이니 커피값을 더하면 3만 원대인 셈이다.

초고속 엘리베이터가 100층까지 다다르는 시간은 단 56초. 검은 복도를 지나면 통유리창 밖으로 해운대 앞바다와 해변, 시가지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하늘 위 커피 맛을 보려면 98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간 뒤 스타벅스 매장(99층) 쪽으로 다시 한 층을 올라야 한다. 앞쪽으로는 해운대 해변, 옆과 뒤로는 장산과 해운대 신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원래 98층에는 부산업체인 블랙업커피가 입점해 있었는데 최근 매장을 접었다. 아쉽다면 인근 해운대점에서 천연 바다소금과 수제 생크림이 들어간 대표 메뉴 ‘해, 수염’ 커피를 맛볼 수 있다.

부산에는 1950년대 미군 PX를 통해 인스턴트 커피가 전래되며 수많은 다방이 생겨났다. 영도구 깡깡이예술마을의 ‘양다방’에 가면 그 옛날 향수를 느껴 볼 수 있다. 최근 중구 보수동책방골목에 들어선 ‘아테네학당’도 이색적이다. 대표 메뉴인 밀다원 커피는 피란 시절 예술인들이 교류했던 다방 ‘밀다원’에서 따온 이름이다.

글·사진=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내려다본 해운대 해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스타벅스 매장에서 내려다본 해운대 해변.


이대진 기자 djrh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