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일까, 허상일까… 증권사도 평가 손 놓은 이차전지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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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프로·포스코홀딩스 등
시총 하루새 수십조 왔다 갔다
“주식 아니라 코인판” 비난에
“닷컴 버블과는 달라” 옹호도

에코프로가 전 거래일 대비 11.91% 오른 111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한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전광판에 에코프로 종가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에코프로가 전 거래일 대비 11.91% 오른 111만8000원으로 거래를 마감한 지난 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 전광판에 에코프로 종가 현황이 표시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차전지 열풍으로 국내 증시가 대혼란에 빠졌다. 하루에도 시가총액 수십조 원이 증발했다가 불어나는 등 이차전지 주식이 극심한 변동성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일주일간 에코프로그룹과 포스코그룹은 주가가 요동치며 시가총액 수십조 원이 왔다 갔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지난 26일엔 주가가 신고점을 달성했다가 일제히 곤두박질치며 60조 원 규모의 시가총액이 1시간 만에 날아갔다. 두 그룹의 시총을 합산하면 25일부터 27일까지 이틀간 34조 원이 증발했다가 28일 하루 만에 13조 원이 되살아났다.

부산의 이차전지 대표 기업 금양도 주가가 올들어 500%가 넘는 폭등을 기록하며 시총이 10조 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지난주 이차전지 급락 당시 이틀만에 시총이 2조 원 가까이 빠졌다. 그러나 금양의 주가는 28일 다시 10% 넘게 오른 채 장을 마쳐 투자자들을 혼란스럽게 했다.

투자자 사이에서는 ‘이게 주식시장인지, 코인시장인지 모르겠다’는 회의 섞인 반응이 나온다.

주식시장 과열을 방지하는 공매도도 에코프로·포스코 그룹주에 쏟아졌다. 이달 26∼27일 포스코홀딩스의 공매도 거래대금은 5686억 원으로 코스피 종목 가운데 가장 많았다.

증권업계는 이차전지 종목에 대한 공개적인 언급을 꺼리고 있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이 에코프로 매수 철회 의견 리포트를 낸 뒤 투자자들의 격렬한 항의에 곤욕을 치렀다. 그 뒤로 증권사들은 리포트는 물론, 발언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다.

표면적으로 조용한 증권사와 달리 여의도는 이차전지와 관련된 사건사고로 들썩거리고 있다. 지난 26일 에코프로 형제와 포스코그룹주 등 이차전지 주가가 장중 일제히 급락하자 개인투자자들은 ‘공매도 세력의 시세조종이 의심된다’며 금융당국에 이를 조사해달라는 집단 민원을 넣고 있다.

시장의 관심이 쏠리자 공시에 ‘이차전지’만 들어가도 주가가 급등하는 기현상까지 나온다. 코스닥 상장사인 자이글은 가정용 그릴을 만드는 회사였다. 그러나 이차전지 관련 공시를 내기 시작하며 지난 3월 한 달간 주가가 8∼9배 폭등했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요즘 증권가에서 이차전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일들은 마치 예전 코로나19 유행 당시의 바이오주 투자 광풍이나 신라젠 소액주주 팬덤을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차전지 광풍이 예전의 ‘닷컴버블’이나 바이오주 열풍과는 다르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한 증권사 연구원은 “과거 ‘버블(거품)’이 끼었던 기업들은 실체가 없었지만 화제의 중심에 있는 이차전지 기업들은 수천 억, 수조 원에 달하는 등 유형자산이 있다”며 “전문가들이 개미들의 이차전지 투자를 비하하는 면도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해석이 엇갈리는 가운데 증권업계는 이차전지 종목들의 주가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입을 모은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기와 펀더멘탈(기초여건)이 안 좋은 시기에 뚜렷한 재료가 형성돼있는 게 이차전지밖에 없어서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린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현재 이차전지 종목에는 외국인의 공매도, 개미의 추격매수, 손실을 못 버티고 공매도를 청산한 쇼트 스퀴즈 등 각종 변수가 뒤엉켜 있는 상태다.

시가총액 측면에서도 이차전지 업종은 독특한 기록을 쌓았다. 이진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달 25일 기준 삼성전자 시총(보통주)은 418조 원이었고 이차전지 기업의 시총 합산액은 472조 원에 육박했다”며 “국내 주식 시장에서 단일 테마가 삼성전자의 시총을 넘어선 적은 2000년 이후로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권기택 기자 kt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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