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권위와 특권의 엘리베이터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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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승혁 사회부 동부경남울산본부 차장

울산경찰청 비상용 엘리베이터가 대대로 청장의 출퇴근 전용 엘리베이터로 변질되고 있다. 경찰 조직의 케케묵은 권위주의 잔재가 울산에서 대물림되는 모양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는 울산청 1층 로비로 들어서면 안내실 왼쪽에 있다. 방문객은 오른쪽 지문 인식 출입문을 통과해야 일반(?)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다. 자칫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간 곧바로 저지당한다. 울산청이 초행인 직원도 방향을 잘못 틀면 “청장님 전용”이란 핀잔에 화들짝 놀라기 일쑤다. 최소 태극무궁화가 어깨에 없다면 얼른 발길을 돌려야 한다.

그래서 비상용 엘리베이터 이마에는 늘 붉은색 숫자 ‘5’가 걸려 있다. 1년 내내 청장실로 예약된 멈추지 않는 권위와 특권의 열차다.

비상용 엘리베이터는 원래 승강기 안전관리법에 따라 긴급 상황 시 소화활동이나 소방구조용으로 써야 한다. 한데 근처에 갈 엄두를 못 내니 원래 용도가 ‘청장 전용 엘리베이터’인 줄 아는 사람도 있다.

황당한 건 더 있다. 비상용 엘리베이터 바깥버튼 옆에는 파란빛을 내뿜는 지문인식기가 떡하니 네모난 입을 벌리고 있다. 아직 사용하지 않는 보안장치인데, 불이 나면 존재 자체로 구조 활동에 혼선을 줄 수 있다. 울산 경찰이 과도한 의전에 매달리는 사이 안전 불감증이 강 건너 불구경하듯 똬리를 틀었나 보다.

왜 이런 일이 지속되는 것일까. 청장이 비상용 엘리베이터라고 쓰인 붉은 글씨와 큼지막한 그림문자를 못 봤을 리 없다. 아니라면 울산청장만 매일매일 ‘비상 상황’이란 말인가.

직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한다. 누구는 ‘청장과 마주치면 불편한데 오히려 잘 됐다’고 합리화하고, 어떤 이는 ‘말해본들…’하며 두터운 ‘인의 장막’에 지레 포기한다. 모난 돌 정 맞는다고, 인사권자에게 찍히기 싫었을 것이다. 위계질서 중심의 폐쇄적 조직구조에서 ‘소통과 화합’은 그저 취임사의 단골 문구 아니던가.

언제부터인지 모르나, 역대 울산청장 여러 명이 비상용 엘리베이터를 독식해 왔다. 특권과 권위에 젖어 드는 순간 알게 모르게 한통속이 된다. 전용 엘리베이터 논란에서 자유로운 청장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측면에서 단순히 울산 경찰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경찰 조직 전체의 방관이 시나브로 작용했다는 생각도 든다.

청장 ‘전용’ 엘리베이터는 사소해 보이나 경찰 조직을 넘어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 배타적 특권 의식과 맥이 닿아 있다. 주변을 보라. 엘리베이터 이용을 거부당한 택배기사, 배달 음식을 들고 고층 아파트 계단을 이용하는 퀵서비스 기사까지…. 서러운 약자의 이야기가 뉴스에서 자주 들려온다. 혹시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분양아파트 주민들과 따로 출입문을 써야 하는 이웃을 본 적은 없는가. 이름만 다를 뿐 ‘전용 엘리베이터’는 갖가지 형태로 우리 사회를 끈덕지게 갈라치기한다.

걸핏하면 권력자에 대한 과도한 예우가 논란이 되고, 작년에는 해경청장의 전용 엘리베이터가 입방아에 올랐지만, 울산 경찰은 그저 남의 일처럼 치부하고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하는 것일까. 누구나 이용하는 가장 보편화된 수단이 편견과 차별을 달고 가장 아프게 권위주의의 상징이 된다는 사실을. 예나 지금이나 구태의연한 조직은 달라진 게 없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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