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노인 비하’ 발언에 PK민주 “19년 전 악몽 떠올라”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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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원장 ‘여명 비례 투표’ 파장
당 내부서도 “왜곡된 인식” 비판
2004년 정동영 ‘노인 폄하’에
PK 후보들 총선서 예상 밖 참패
“박빙 지역인 PK엔 큰 악재 우려”
부울경 민주 인사들 트라우마 호소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2030 청년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이 지난달 30일 2030 청년좌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인 비하’ 논란을 부른 더불어민주당 김은경 혁신위원장의 ‘여명 비례 투표’ 발언을 둘러싼 파장이 1일에도 이어졌다. 국민의힘뿐만 아니라 민주당 내부에서도 “왜곡된 인식”이라는 비판 발언이 이어졌지만, 반대로 친명(친이재명)계 일각에선 “맞는 얘기”라고 동조하고 나서면서 계파 간 쟁점으로 비화되는 양상도 보인다. 이런 상황에 가장 당혹감을 느끼는 곳은 다름 아닌 부산·울산·경남(PK) 민주당이다. 19년 전의 ‘트라우마’가 떠올라서다.

2004년 17대 총선을 20여 일 앞둔 시점에서 정동영 당시 열린우리당(현 민주당) 의장의 “60대 이상 70대는 투표 안 해도 괜찮다. 그분들은 곧 무대에서 퇴장할 분들이니까 집에서 쉬어도 된다”는 이른바 ‘노인 폄하’ 발언은 PK 민주당에 깊은 상처로 남아있다. 당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부산에서도 민주당 후보인 박재호(남을), 최인호(해운대기장갑), 정진우(북강서을), 경남 송인배(양산) 후보 등이 여론조사에서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후보들을 앞서며 3당 합당 이후 처음으로 ‘일당 독식’이 깨질 것이라는 기대감이 상당했다.

그러나 정 전 의원의 돌출 발언 이후 기류가 급변하면서 결국 PK 민주당은 사하을 지역에서 조경태 당선자 단 한 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지역 민주당 인사들은 “그 사건이 없었다면, PK 정치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오랫동안 아쉬움을 토로했다. 표심의 유동성이 큰 데다 노인 인구 비중이 타 지역에 비해 높은 PK에서는 그때 이후 노령층의 역린을 건드리는 발언은 ‘절대 금기’였다.

앞서 김은경 위원장은 지난달 30일 20·30세대 청년 좌담회에서 “둘째 아이가 중학생 때 ‘왜 나이 드신 분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해’라고 질문을 했다”며 “자기가 생각할 때는 자기 나이부터 남은 평균 기대 수명까지, 엄마 나이부터 남은 기대 수명까지 해서 비례적으로 투표를 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말은 되게 합리적이죠”라고 말했다.

남은 기대 수명이 다른 청년과 노인의 1표를 달리 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의미여서 정치권 등에서는 노인 비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김 위원장은 논란이 확산되자 “아들이 중학생 시절 낸 아이디어를 소개하며 청년들의 정치 참여를 독려했을 뿐이다. 노인 폄하로 몰아가는 것은 구태적 프레임”이라고 반박했지만,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어르신 폄하 DNA’가 또다시 고개를 든다. 유불리만 따지는 정치 계산법이 빚은 막말 참사”라며 공세에 나섰다.

민주당 내에서도 “귀를 의심했다. 선거 제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조응천 의원), “황당하다. 굉장히 몰상식한 얘기” 등 비명(비이재명)계를 중심으로 비판 발언이 이어졌다. 그러자 친명계인 양이원영 의원은 이날 오후 페이스북 글을 통해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그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며 “미래에 더 오래 살아있을 청년과 아이들이 그들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김 위원장 발언에 동조하고 나서면서 논쟁을 재발화시켰다.

부산의 한 야권 인사는 “분명한 건 김 위원장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해 괜한 오해를 산 것 아니냐”면서 “실언이라고 사과하고 조기에 수습하면 될 일인데, 정파적 시각에서 자꾸 문제를 키우면 PK와 같은 박빙 선거 지역에서는 큰 악재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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