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우리 시대의 교실 이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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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서울시교육청 정문에 달린 추모 리본. 연합뉴스 서울시교육청 정문에 달린 추모 리본. 연합뉴스

식민지시대 학교 교육의 목표는 ‘충량’한 황국신민을 양성하는 데 있었다. 제복 차림에 칼을 찬 모습은 교사의 권위를 상징했다. 충성과 복종을 강요하며 훈육의 이름으로 체벌을 서슴지 않았다. 근대 일본이라는 국가와 사회질서를 창출한 군대문화가 교실까지 침범했던 셈이다. 해방 이후 교육은 새로운 민족국가의 탄생과 국민만들기(nation-building)에 적극적으로 동원되었다. 한국전쟁기 전시교육과 전후 국가 재건을 위한 교육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교육은 지배이데올로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관철하는 수단이었다.

고도 압축성장을 이룩한 개발독재시대를 거치면서 과열 경쟁과 성공에 대한 강박이 사회를 포위했다. 이 과정에서 성적만으로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학교문화가 익숙하게 자리잡았다. 87년 체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서태지와 아이들 3집 앨범에 수록한 ‘교실 이데아’는 권위적인 학교문화를 정면으로 비판한 노래다. “사방이 꽉 막힌 교실”에서 획일화된 주입식 교육이 삶을 “먹어 삼키는” 현실을 오롯이 반영했다. 좋은 대학에 진학하여 “좀 더 비싼”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서야만 했다.

다양성과 창의성이 핵심 가치로 떠오르면서 학교는 새로운 역량의 산실로 변모해야 했다. 과거 어느 때보다도 학생 개개인의 재능과 적성이 강조되었다. 교육 혁신이 거듭되는 가운데 교실에서는 권위주의 시대에 쉽게 목도할 수 없었던 새로운 문제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교실 붕괴, 교권 추락, 학생 인권, 아동학대 관련 법, 스쿨 미투 등 학교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는 다양한 목소리들이 터져 나왔다. 교육당국은 위기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다. 교실을 먹어 삼키는 괴물 학생과 교육현장을 유린하는 괴물 학부모의 출현에 제도적인 대책을 마련하기보다는 교사의 윤리의식과 헌신만을 강요해 온 측면이 크다. 이제는 교육의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접근방식을 달리해야 할 때다.

선친은 교사였다. 거리에서 제자를 마주칠 때면 이름뿐만 아니라 학교와 학년, 번호까지 정확하게 기억하며 반기곤 했다. 관심이 있으면 자연히 기억한다고. 당신을 성장시킨 이들은 다름 아닌 제자들이라며 내내 교단을 그리워했다. 다시 태어나도 교사가 되겠다는 마음은 교직이 천직이어서가 아니라 학생과 더불어 성장하는 과정에서 누렸던 보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최근 한 초등학교 교사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드러난 우리 교육의 민낯을 마주하면서 교사로 일하는 지인에게 위로의 인사를 건넸다.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교단을 지키겠다는 답신에 가슴이 먹먹했다. 교실은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치열한 삶의 현장이 아닌가. 우리 시대의 교실 이데아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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