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하다 '칼부림 갤러리'까지[키워드로 트렌드 읽기]
검색 사이트에 남아있는 디시인사이드 캡처 화면
최근 이른바 '묻지마(무차별) 흉기난동' 사건이 연이어 벌어진 뒤 이를 모방한 살인 예고 게시글까지 온라인에 잇따라 올라와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대학생 개발자들이 게시글에 언급된 장소, 작성자 검거 여부 등을 지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공개한 웹서비스 ‘테러리스(Terrorless)’는 사이트 개설 이틀 만에 누적 방문자 수가 10만 명을 넘었다. 또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범행 예고 글을 취합한 뒤 지역별 리스트를 만들어 다른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등 서로의 안전을 챙기는 분위기다.
수사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서울 신림동 흉기난동 사건 이후 파악된 범행 예고 게시글 수는 이미 200여 건을 넘어선 것으로 보인다. 그 중 30% 이상은 작성자가 특정돼 검거됐고, 구속된 피의자도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검거된 피의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10대인데, 이 중에는 형사처벌을 받지 않는 촉법소년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의 엄중 처벌 방침에도 이 같은 글은 여전히 온라인상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 중인데, 알려진 출처의 상당수는 '디시인사이드(DCinside)'이다.
4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 주변에 경찰이 배치돼 있다. 지난 3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서현역과 연결된 백화점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묻지마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해 시민 14명이 다쳤다. 연합뉴스
'디시(DC)'라는 약칭으로도 불리는 이 곳은 당초 디지털 카메라 정보를 제공하는 웹사이트로 출발했지만, 사실상 커뮤니티 사이트로 정체성이 변했다. 20년 넘게 대한민국 인터넷 문화를 이끈 한 축으로 꼽히며 수많은 유행어와 은어를 탄생시켰고, 현재도 국내 주요 포털사이트에 이은 웹사이트 방문자 수 5위를 기록 중일만큼 파급력이 큰 곳이다. 특히 로그인을 거치지 않고서도 글을 작성할 수 있는 '익명성'이 핵심이다.
일부 갤러리는 이런 점을 악용해 미성년자가 연루된 범죄를 유도하거나, 사건을 희화화하며 2차 가해를 서슴지 않는 게시물을 만들어 논란이 됐다. 올해 4월 청소년이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 이를 온라인에 생중계한 사건 역시 그 배경으로 '우울증 갤러리'가 지목됐고, 현재도 'XX팸(패밀리)'이라 불리는 무리 내에서 일어난 성착취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갤러리의 '접속 차단'까지 논의했지만, 사업자에 자율규제 강화를 요청하는 데 그쳤다.
사업자 측은 '표현의 자유'를 앞세워 "모니터링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되풀이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예 '칼부림 사건 갤러리'까지 생성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른 커뮤니티 이용자들도 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해당 갤러리는 폐쇄 조치된 상태지만 며칠 사이 검색사이트에 남아버린 흔적을 감안한다면 사업자의 적절한 조치가 제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성규환 부산닷컴 기자 bastion@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