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도덕적 해이, 최고경영자까지 책임 묻는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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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계좌 개설·미공개 정보 이용 등
경남은행·대구·국민 연쇄 사고 발생
금감원, 은행장 간담회 갖고 대책 요구
사고 발생 은행 CEO 문책 입법 본격
늑장 보고 대응 위해 '무작위 점검'도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인천 서구 청라 하나글로벌캠퍼스에서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최근 금융권 사고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지난 10일 인천 서구 청라 하나글로벌캠퍼스에서 행사가 끝난 뒤 취재진과 만나 최근 금융권 사고에 대한 생각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수백억 원의 횡령에서부터 불법 계좌 개설, 미공개 정보 이용 불공정거래까지 은행권 금융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감독당국은 최고 책임자의 책임을 묻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내비쳤고, 국회에서도 관련 입법 작업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팽배한 금융권 도덕적 해이

지난 2일엔 BNK경남은행에서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담당 직원이 7년 동안 562억 원의 회삿돈을 횡령·유용한 사실이 포착돼 검찰이 경남은행을 압수수색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해 우리은행 직원의 700억원대 횡령에 이어 은행권에서 역대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횡령 사건이었다.

일주일 뒤인 지난 9일에는 KB국민은행에서 사고가 터졌다. 증권 업무를 대행하는 직원들이 고객사 미공개정보를 활용해 127억 원의 부당이득을 취한 사실이 적발되어 검찰에 넘겨졌다. 은행 내 증권 업무 담당자들이 내부 정보인 무상증자 일정 등을 미리 알고 이를 주식 매매에 이용한 것이다.

같은 날 금융감독원은 DGB대구은행 직원들이 고객 동의 없이 예금 연계 증권계좌를 임의로 추가 개설한 혐의와 관련해 긴급 검사에 착수하기도 했다.

금감원은 대구은행 일부 지점 직원 수십 명이 평가 실적을 올리기 위해 지난해 1000여 건이 넘는 고객 문서를 위조해 증권 계좌를 개설한 사실을 외부 제보 등을 통해 인지했다.

대구은행은 앞서 지난해 8월부터 은행 입출금통장과 연계해 다수 증권회사 계좌를 개설할 수 있는 서비스를 도입·운영 중이다. 연루된 직원들은 고객이 실제 영업점에서 작성한 A 증권사 계좌 개설신청서를 복사한 후 이를 수정해 B 증권사 계좌를 임의로 개설하는 형태로 비위 행위를 저지른 것으로 금감원은 보고 있다.

대구은행은 이번 혐의 내용과 관련한 민원 접수 후 지난달 12일부터 현재까지 자체감사를 진행해 왔다.

■손질 나선 금융당국

감독당국이 지난해 우리은행에서 발생한 700억 원대 횡령 사고 후속 대책으로 금융사에 내부통제 강화를 강하게 주문하고 관련 제도개선 방안까지 확정했지만, 은행 직원들의 비위 행위는 끊이질 않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오는 17일 은행장 간담회를 열고 내부통제 강화 등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금감원 이준수 부원장이 주재하는 이 자리에는 17개 국내은행 은행장들이 대거 참석할 예정이다. 내부통제 관련 은행들의 준비사항을 점검하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형 금융사고나 내부 직원 일탈이 반복될 경우 최고경영자(CEO)까지 책임을 물리는 입법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앞서 지난 10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인천 서구 하나글로벌캠퍼스에서 열린 ‘중소기업 ESG(환경·사회책임·지배구조) 경영을 위한 업무협약식’ 후 기자들과 만나 “여·수신 과정에서 고객 자금 운용은 은행의 기본적인 핵심 업무”라며 “횡령을 한 본인 책임은 물론, 관리를 제대로 못한 사람, 당국의 보고가 지연된 부분 등에 대해 법령상 허용 가능한 최고 책임을 물을 생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날 금융당국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정부 입법보다 의원 입법이 법안 처리 속도가 빠르고 시행 시기도 앞당길 수 있다는 판단이다.

이는 최근 은행권 대형 비위가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옴에 따라 내부통제 강화 ‘속도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금융회사 지배구조법 개정안의 주요 골자는 내부통제 관련 임원별 책임 범위를 사전 확정해 두는 ‘책무 구조도’ 도입이다. 특히 책무 구조도에는 CEO의 책임도 명시된다. 대형 금융사고나 횡령 같은 조직적·반복적 사고 시 CEO도 문책 대상이 될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현행 금융회사 지배구조법에는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 등만 명시돼 있고 임원별 구체적 책무가 정해져 있지 않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여기다 최근 쏟아낸 내부통제 강화 대책에도 금융회사들의 허위 및 늑장 보고가 이어지자 ‘무작위 점검’ 등을 통해 대응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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