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테·실러 하우스 등 세계문화유산 즐비한 ‘지성의 도시’ [부산 청년작가, 유럽에 가다]
<3> 괴테와 실러가 사랑한 도시, 독일 바이마르
바우하우스 태생지 명성도 한몫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파우스트’ 원본 등 희귀서 많아
부헨발트수용소 역사 아픔 상기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신관은 책큐브가 장관이다. 4층 높이의 정사각형 중앙 홀이 있고, 네 벽 서가를 따라 층마다 난간을 설치했다. 그래서 별칭이 '책큐브'이다. 김은영 선임기자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내 로코코 홀. 이 도서관은 안나 아말리아가 궁정 도서관을 개조해 만들었다. 김은영 선임기자
오스트리아를 떠나 독일로 향했다. 이번 ‘해외 문화 탐방’에 참여한 부산 청년작가들의 장르별 특성을 고려하느라 나라별로 특징 있는 도시 1~2개를 골라서 방문했는데 독일은 예외였다. 네 개 도시에 머물거나 경유했다.
이들 도시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이 바이마르다. 인구 6만 5000명밖에 안 되는 아주 작은 도시지만, 이 도시가 독일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났다. 베를린이 독일의 정치 수도, 프랑크푸르트가 경제 수도라면 문화 수도는 바이마르란 말이 나올 정도다. 괴테 하우스, 실러 하우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등 12개의 개별 건물과 단지는 199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독일의 대문호 괴테와 실러가 생의 마지막을 보낸 도시, 바이마르로 떠난다.
국립 바이마르 극장 전경. 김은영 선임기자
■괴테와 실러 마지막 생 보낸 곳
산보하듯 구시가지를 걸었다. 괴테(1749~1832)와 실러(1759~1805) 두 사람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바흐 같은 음악인 동상도 꽤 있지만 독일 전체적으로도 괴테 동상 숫자가 절대적 1위를 차지한단다. 그만큼 독일인들로부터 사랑받는 인물이라는 증거다.
국립 바이마르 극장 앞 괴테(왼쪽)와 실러 동상. 김은영 선임기자
국립 바이마르 극장 앞에도 괴테와 실러 동상이 있다. 경험을 추구한 괴테와 이념을 추구한 실러는 서로 성향은 달랐지만 두 사람의 우정과 협력은 바이마르를 독일문학과 세계문학의 중심지로 올려놓게 된다. 괴테와 실러를 사랑한 사람들은 그들의 작품이 무대에 올려지곤 했던 궁정극장(지금의 국립극장) 앞 광장에 두 사람의 동상을 세웠다. 바이마르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보니 그 자리를 차지한 듯싶다. 신장이 190cm였던 실러와 169cm였던 괴테를 아예 같은 크기로 만든 점도 이색적이다.
대학 건물만 눈으로 훑는 수준이지만, 현대 건축과 디자인에 큰 영향을 준 바우하우스가 탄생한 곳도 바로 여긴 만큼 바이마르 캠퍼스 분위기를 한 번쯤 느껴봐도 좋겠다.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 뒤뜰에 자라고 있는 포도. 김은영 선임기자
■텃밭과 포도 가꾸는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
새로운 도시를 갈 때마다 어떤 사람이 주로 찾는지 궁금해져 방문자들을 요모조모 살피는 편인데, 바이마르에선 독일인 혹은 유럽인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현지인들도 많이 찾는 곳이라는 이야기다. 도시 자체가 차분하고, 초록 숲이 많아선지 편안했다.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 뒤뜰의 텃밭. 김은영 선임기자
괴테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의 생가를 꾸민 ‘괴테 하우스’는 풍부한 전시 자료와 형식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면 괴테가 마지막 생을 보내다 숨을 거둔 바이마르의 자택 ‘괴테 하우스’는 자연 친화적인 편이다. 괴테가 숨진 방 창으로 보이는 뒤뜰 정원에선 지금도 누군가에 의해 열심히 텃밭을 가꾸고 있고, 괴테가 사랑한 와인과는 품종이 다를 수 있지만 포도가 한창 영글어 가는 중이다. 실러 하우스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 내부. 김은영 선임기자
연극인 김가영은 “하나의 작품을 쓴다는 게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 때문에 집필한 장소를 보면서 이곳에서 그도 꽤 고통스러웠을까? 아니면 즐거웠을까? 등 혼자 상상에 나래를 펼쳤었다. 그리고는 얼른 돌아가서 대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많은 이가 생가를 방문하는 이유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서가의 책들. 괴테가 읽은 책에는 작은 메모지에 일련번호가 써져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 내 로코코홀. 이 도서관은 안나 아말리아가 궁정 도서관을 개조해 만들었다. 김은영 선임기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
바이마르에 가면 꼭 들러야 할 곳이 있다.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도서관’이다. 오늘날의 바이마르를 이룩한 바이마르 공국의 안나 아말리아 대공비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도서관은 초록성(본관)과 책큐브로 불리는 신관으로 나뉜다. 괴테는 구관에서 30여 년간 관장으로 일했다. 이런 이유로 도서관에는 괴테의 역작 <파우스트> 원본이 남아 있다. 이 밖에 도서관에는 1만 권에 이르는 셰익스피어 작품들과 16세기 루터의 성경책 등 희귀한 책들도 많이 보관돼 있다.
도서관 내부는 풍부한 장서뿐 아니라 아름다운 디자인이 인상적이다. 도서관 중간의 로코코 홀은 구관 도서관의 핵심이다. 내부에는 괴테와 실러의 두상, 초상화가 전시돼 있다. 신관 공사를 앞두고 책 이전 작업을 시작하던 2004년 9월 2일 밤 배선 합선으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상당수 책이 소실되었으나 수천 명의 시민들이 인간띠 작전으로 책을 옮겨서 화제가 됐다. ‘책큐브’로 유명한 신관은 괴테 탄생 250주년이던 1999년 이후 시작해 보수 공사 도중 개관했다.
안나 대공비는 결혼 2년 만인 18세에 남편을 사별하고 유복자를 대신해 공국을 다스리면서 아들의 튼튼한 통치 기반 마련을 위해 당대의 지성을 많이 초빙하게 된다. 괴테와 실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도 이때 바이마르로 불러들였다. 안나 대공비의 열정이 바이마르공국을 유럽 최고의 문화강국 반석에 올려놓는 데 크게 일조한 듯하다.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정문. 시계는 당시 시간에서 멈춰 있다. 김은영 선임기자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내 일부 남아 있는 건물. 김은영 선임기자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 방문
바이마르 인근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도 한 번쯤 가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우리 일행도 당초 예정에 없던 코스였는데 현지에 도착한 후 바이마르에서 그리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돼 급하게 일정을 조절해 다녀왔다. 1937년 나치가 바이마르 교외에 세운 강제 수용소이다. 부헨(너도밤나무)+발트(숲) 수용소로, 유대인 학살과 강제노동이 자행됐다. 25만 명에 달하는 죄수들이 이 수용소를 지나갔고 적어도 5만 6000명이 수용소에서 죽었다고 한다. 부헨발트는 폴란드처럼 몰살 수용소는 아니었지만 충동적이고 잔혹한 죽음으로 악명 높았다. 부헨발트는 인체 대상 다양한 ‘의학’ 실험도 시도했다. 1950년 수용소가 문을 닫았을 때 대부분의 건물은 파괴되었지만, 콘크리트로 된 감시탑 같은 몇 채의 건물은 남았다. 현재 추모관과 교육의 장이 별도로 마련돼 있으며, 독일 학생들은 1년에 두 번씩 강제 수용소 유적을 방문하고 있단다. 이날도 많은 학생이 단체 견학을 왔다.
국악인 엄하연(가야금 연주자)은 “독일은 문학과 예술, 역사 모두를 볼 수 있는 나라였다. 화가인 뒤러와 문학가인 괴테를 보고 박물관, 미술관만 갔다면 아쉬웠을 건데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에 감으로써 정말 뜻깊은 여행이 되었다”고 털어놨다. 이다영 한국 춤꾼은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라며 “박물관과 미술관, 유명 관광지를 가는 것도 좋았지만 독일의 역사를 직접 보고 듣고 느끼니까 독일에 대해 더 깊이 알 수 있어서 좋았다”고 지적했다. 손유하 작가(한국화)는 “비슷한 아픈 역사를 겪은 우리나라 입장에서도, 한 인간으로서도 전쟁은 일어나서 안 되는 일이라는 마음이 더 굳건해졌다”면서 “가해자로서 피해자들에게 끝없이 사죄하고 있는 독일의 태도가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우리끼리도 비슷한 말을 주고받았다. “예술가라고 미술과 음악회만 봐서 될 게 아니라 역사를 알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바이마르(독일)/글·사진=김은영 선임기자
※이 기사는 (사)부산예술후원회가 지원했습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