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오펜하이머’ 단상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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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도다.’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 기타에 나오는 구절이다.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취미 삼아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면서 번역해 유명해진 말이다. ‘원자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가 전 세계에서 총 8억 5298만 달러(1조 1255억 원)를 벌어들였다. 국내에서도 3주째 주말 박스오피스 1위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은 좋은 영화인데 잘 모르겠다는 반응도 적지 않다. 필수 시청해야 한다는 관련 영상도 쏟아진다. ‘핵, 매카시즘, 일본’이라는 세 개의 키워드를 설정하고 보면 어떨까 싶다.

원자폭탄은 1945년 7월 16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8월 6일 히로시마, 9일 나가사키의 피해는 상상 이상이었다. 전 세계 핵무기는 1986년 7만기까지 늘었지만, 지난해 초 1만 2705기로 줄어 한숨 돌리나 싶었다. 향후 10년간 핵무기 증가가 예상된다는 우울한 소식이다. 푸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핵무기 사용 의사를 내비치자, 다른 핵보유국까지 핵전략을 재검토하고 있다. 북한도 핵무기 20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북한은 전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핵 사용도 불사할 것이다”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누구도 ‘전쟁 불사’라는 표현을 함부로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이유다.

원자폭탄 개발로 2차대전을 끝낸 오펜하이머는 전후 스파이로 몰려 청문회에 불려 나가는 수모를 당한다. 동생 내외가 공산당원이었고 주변 좌익 인사들과 어울렸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의 수소폭탄 제조에 반대하고, 국제적인 핵무기 통제를 지지하는 입장 때문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더 지배적이다. 핵무기 의존을 줄이자고 주장하자 미국 정부는 충성심을 의심했다. 역사가들은 “이 사건은 매카시즘의 승리였다”라고 기록한다. 1950년대 기승을 부리다 사라진 매카시즘이 2023년 한국에서 좀비처럼 되살아날 줄은 몰랐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유독 일본에서는 상영하지 않는다. 원폭 피해자 일본의 불편한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제국주의 일본의 도발에 있었다. 역사를 외면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원전은 원자폭탄을 만들면서 알게 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만들어졌다. 원폭 피해자 일본이 원전 오염수를 바다로 흘려보내 세계의 안전과 평화를 위협하는 이 아이러니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이 영화를 보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해 보면 좋겠다.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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