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립무용단 나아갈 방향은 동시대성과 로컬리티 확보”
부산시립무용단 50주년 토론회
최찬열·이상헌 비평가 발제
“공공마저 스펙터클 잠식 안 돼”
“지역 소재주의에 빠질 우려도”
“레퍼토리 개발 필요” 의견도
부산시립예술단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2월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 모습.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올해로 창단 50년을 맞은 부산시립무용단(예술감독 이정윤·이하 시립무용단)이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한국무용의 동시대성과 로컬리티를 강조하고 또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최근 공공 무용단 공연마저 대중성 확보라는 미명 아래 스펙터클에 잠식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는 경계해야 하고, 지역성을 지나치게 강요하다 보면 소재주의에 빠질 우려가 커 이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고도 주장했다.
부산시립예술단(단장 안병윤 행정부시장·부단장 이정필 (재)부산문화회관 대표이사)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고 이같은 내용을 참석자끼리 공유했다.
부산시립예술단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사진은 종합토론 시간에 부산시립무용단 이정윤 예술감독이 답변하는 장면.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이날 발제는 시립무용단 단원을 역임한 최찬열 춤 비평가와 이상헌 춤 비평가가 맡았다. 두 사람은 ‘한국무용의 동시대성과 로컬리티를 구축하라-1980~1990년대 초까지 시립무용단의 창작 활동을 중심으로’와 ‘부산시립무용단 작품의 동시대성과 로컬리티를 향한 길-시립무용단 50년사를 중심으로’를 각각 발표했다.
부산시립예술단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특히 최 비평가는 “1973년 창단한 시립무용단은 1980년대 괄목할 만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춤의 고장 부산의 진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었고, 이 무렵 부산은 서울과 더불어 그야말로 실질적인 춤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이 시기 특히 눈여겨볼 작품으로는 김현자 안무의 ‘보리피리’(1981년)와 최은희 안무 ‘늪’(1983년)을 꼽았다. 김현자 작품은 두꺼비춤, 도굿대춤 등 동래 지역의 토속적인 몸짓을 신무용뿐 아니라 현대적인 움직임 등과 조화롭게 엮어 한국무용의 현대화와 새로운 양식화를 꾀했다. 최은희 작품은 기존 춤 형태에서 벗어나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시대적 메시지로 새로운 춤 세계를 던져 주었다.
1990년대 초 시립무용단은 현대무용 안무자를 객원 안무자로 초청하는 등 한국무용 기반 공공 무용단 최초로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이 창조적으로 만나는 모범 사례를 보여주기도 했다. 현대무용을 기반으로 하는 안무가 남정호와 정귀인이 시립무용단과 협력 작업을 통해 각각 ‘목신의 오후’(1990년)와 ‘무천’(1992년)을 선보여 호평받았다. 또 홍민애 안무가는 제27회 정기 공연과 전국시립무용단 무용제에 지역성 짙은 작품 ‘다시 자갈치에서’(1992년)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최 비평가는 “198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펼쳐졌던 활동 안에 이미 시립무용단의 창작 방향과 기본 틀이 다 갖추어져 있고, 거기에는 로컬리티와 현대성 혹은 동시대성 그리고 대중성 등이 추구해야 할 핵심 가치로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다만 최 비평가는 “각종 스펙터클로 넘쳐나는 상품 물신 사회에서 공공 무용단의 공연마저 스펙터클에 잠식돼선 안 된다”고 분명히 선을 그었다. 최근 국립무용단과 서울시무용단, 부산시립무용단, 경기도무용단뿐 아니라 전국 대부분의 공공 무용단 공연을 일별해 보면 전통춤을 재구성하거나 여기에 스토리텔링을 입힌 쉽고 재미난 공연으로 대중성을 강화하거나, 아니면 휘황찬란한 볼거리를 전면에 내세우며 시각성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시립무용단이 국립무용단뿐 아니라 여타의 다른 공공 무용단과 구별되는 특성을 가진 무용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몸의 일상적 감성 체계를 뒤흔들 만한 힘을 가진 예술성 짙은 공연을 생산하는 데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게 최 비평가의 주장이다.
부산시립예술단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고 있다.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이 비평가 역시 “지난 50년 동안 한국무용의 동시대성을 담아내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 왔다”고 평가하면서도 “시립무용단 작품에서 부산의 지역성을 지나치게 기대하다 보면 그 기대가 부담되어 소재주의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 비평가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향토론에 동참한 미술가들이 정체된 과거의 기억만을 소재로 다루어 조선의 이미지를 퇴보시킨 것처럼, 소재주의는 부산 사람의 삶과 역사, 로컬의 리얼리티와는 괴리된 하나의 풍경으로 부산을 박제할 위험이 있다.
이 비평가는 또 “시립무용단 작품 중에서 동시대적 로컬리티로 호응을 얻은 경우는 대부분 소재주의를 벗어난 작품이었다”고 부연 설명한 뒤 “안무자에게 특정한 방식을 압박하기보다 타자의 시각이 부산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기에 예술가 개인의 역량과 고민에 의해 작품에 반영되는 부산을 기대하는 편이 나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부산시립예술단은 12일 오후 3시 부산문화회관 다듬채 1층에서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발전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사진은 2월 부산시립무용단 창단 50주년 기념 공연 모습. 부산시립예술단 제공
한편 토론자로 나선 최은희 무용가는 “왜 우리 시립무용단에는 ‘백조의 호수’처럼 반복적으로 공연할 수 있는 작품이 없을까 항상 아쉬웠다. 전통 무용 레퍼토리를 제외하고 비중 있는 작품이 재공연되는 걸 별로 보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시립무용단이 독도(섬)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국춤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고 하면서도 부산에만 머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서울 등 타시도 교류 공연도 활성화하길 바란다”고 피력했다.
이노연 전 시립무용단 안무가는 “시립무용단이 50년 동안 87회의 정기 공연을 했다면 87가지 아이디어가 있는 셈인데 기존 작품 중에서도 새 안무자가 새로운 시각에서 끊임없이 재구성한다면 결국엔 독보적인 작품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 뒤 “때로는 60~80분에 이르는 대작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6~8분짜리라도 임팩트 있게 대중을 사로잡는 시도를 해 봄 직하다”고 조언했다.
김은영 선임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