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지만 마음에 깃드는, 최욱경의 그림들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
국제갤러리 부산점 10월 22일까지
1960년대 미국 유학 때 드로잉 등
그림 옆 작가 생각 담긴 텍스트 눈길
최욱경 '실험(實驗)'.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국제갤러리 부산점은 최욱경 개인전 ‘낯설은 얼굴들처럼’을 오는 10월 22일까지 개최한다. 전시 제목은 최욱경이 1972년 첫 번째 미국 체류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활동하던 시기에 출간한 국문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교학도서)의 제목에서 가져왔다. 이 시집에는 45편의 시가 실렸는데, 이 중 시 ‘앨리스의 고양이’는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열린 최욱경 회고전(2021~2022)의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최욱경은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963년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시간주 크랜브룩 미술 아카데미와 뉴욕 브루클린 미술관 미술학교 등에서 공부하며, 다양한 형식과 매체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뉴햄프셔주 프랭클린 피어스 대학에서 조교수로 강단에 섰던 최욱경은 1972년부터 1974년 초까지 한국 미술계에서 활동했다. 1979년 영구 귀국해 영남대와 덕성여대 교수를 재직했고, 1985년 별세했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최욱경 개인전이 열린다. 사진은 전시 작품들. 오금아 기자
최욱경 'experiment A'.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최욱경에게 있어 미국 체류는 작가적으로 중요했다. 언어와 문화가 모두 낯선 환경에서 최욱경은 ‘뿌리가 흔들리는 충격’을 받았다. 유학 기간 동안 최욱경은 추상표현주의, 후기회화적 추상, 팝아트, 네오다다까지 동시대 미국 현대미술을 접하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또 잉크, 연필, 차콜, 콩테, 판화 등 다양한 매체를 탐구했으며 캔버스 위에 텍스트를 도입하거나 신문을 이용한 콜라주 등 다양한 실험을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1960년대 최욱경이 미국 유학 시절 작업한 흑백 드로잉과 판화 29점, 크로키 9점을 소개한다. 특히 흑백 드로잉의 인상이 강렬하다. 드로잉 작품에 등장하는 단어와 문장은 작업 당시 작가의 심경이나 생각을 더 쉽게 느끼도록 한다.
최욱경 'Untitled'. 국제갤러리(사진 안천호) 제공
최욱경의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 이번 국제갤러리 부산 전시의 제목이기도 하다. 이 책은 1989년 재발간 된 것으로 현재는 절판됐다. 오금아 기자
최욱경 자신인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인물 그림 옆에 영문으로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렇지만. 내 맘에 안 들기에 난 도와줄 수 없겠다’는 문구가 써진 작품이 있다. 이지러진 얼굴 속 눈동자가 조금은 슬퍼 보인다. 1969년 3월 22일이라는 날짜가 쓰인 작품 ‘언타이틀드’에서는 태아가 웅크리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에 ‘때가 되면 해가 뜰까…과연 내게 때가 오긴 할까?’라는 글이 쓰여 있다. ‘나는 미국인인가’로 자신의 정체성을 질문하고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강렬하게 표현한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최욱경은 1965년 <작은 돌들>이라는 영문 시집을 출간하며 문학에도 관심을 가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시집 <낯설은 얼굴들처럼>에 실린 삽화 16점 중 ‘습작’ ‘실험’ 등 6점이 소개된다. 국제갤러리 부산점(수영구 망미동)에는 1989년 재발간한 동명의 시집(열린책들·절판)이 같이 전시되어 있다. 한편 이번 전시 관람객은 최욱경의 시 6편과 전시 안내가 실린 리플릿을 현장에서 받을 수 있다.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