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거북이열차 태양호
일제 강점기 때 대부분 건설된 북한 철도의 가장 큰 특징은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여 중국, 러시아와 국제 철도 운영이다. 신의주-단둥, 남양-도문, 만포-집안, 두만강-하산 등 4개 국제 노선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러시아와 무기 거래를 위해 중무장한 방탄 열차인 태양호를 타고 간 총 781km의 북한 내 최장 노선인 평라선은 평양을 기점으로 북부 동해 해안선을 따라 나진을 거쳐 러시아 하산을 통해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된다.
김정은 일가의 열차 사랑은 3대에 걸쳐 이어지는 모양새다. 김일성 주석이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었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선물했던 1호 열차로 평양~모스크바, 평양~중국~베트남을 방문한 데 이어, 김정일 위원장도 2001년 7·8월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위해 평양~모스크바를 24일에 걸쳐 오가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아버지 김일성 주석의 밟았던 길을 따라 러시아 땅을 밟아야 한다”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3대째인 김정은 위원장도 이번 러시아 푸틴 대통령과 회담을 위해서 평양~나진~두만강~러시아 하산~스보보드니까지 2300km를 열차로 이동했다. 할아버지와 비슷한 행보로 정통성과 존재감을 과시한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지만, 김 씨 일가의 열차 사랑에 비해 북한 철도망은 해방 이후 대대적인 개보수가 이루어지지 못해 노후화가 심각하다고 한다. 2018년 남북 공동조사단에 의하면 열차 운행 속도가 시속 30km 내외로 밝혀졌다. 한국의 KTX가 아닌 무궁화호 속도가 70~85km인 점과 비교하면 거북이 수준이다.
김정은 위원장은 13일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두 번째 북러정상회담을 벌였다. 이번 회담에서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우크라이나 침공에 사용할 탄약 등을 대량으로 제공받고, 북한은 정찰위성, 핵탄두 및 핵추진 잠수함과 관련한 군사 기술과 부품을 대가로 받을 것으로 보인다.
김일성은 생전에 “철도는 인체에서 혈액 순환”이라고 강조했다고 한다. 정상국가라면 시속 30km 동맥경화와 같은 거북이 열차로 러시아를 찾아가 협상할 것이 핵무기 기술뿐일까. 북한~중국~한국~러시아를 경유하는 대륙연결화물수송망 등 민생과 경제 도약을 위한 개혁·개방은 왜 안중에도 없을까. 세계 최빈국인 북한에 무기를 구걸하는 초강대국 러시아의 처지도 처량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옛말에 ‘가재는 게 편이고, 검둥개는 돼지 편’이라고 했던 모양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