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비규환’ 북아프리카… 이번엔 리비아 대홍수로 최소 1만 5000명 사망·실종
폭풍우에 댐까지 무너져 대재앙
항구도시 데르나서 5300명 숨져
건물 깔리고 바다 쓸려간 시신도
정치 혼란·기후변화가 재난 키워
12일(현지 시간) 리비아의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가 홍수 피해로 폐허가 된 모습. AP연합뉴스
북아프리카 모로코에서 최근 강진이 발생해 3000명가량의 사망자를 낸 데 이어 북아프리카 리비아에서 대홍수가 발생해 5000명 넘게 사망하고 최소 1만 명 이상이 실종됐다.
12일(현지 시간) AP 통신·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리비아 동북부 항구도시 데르나에서만 사망자가 5300명 이상 나왔다.
데르나에는 지난 10일 리비아 동부를 강타한 폭풍우 ‘다니엘’ 탓에 이틀간 많은 비가 내렸는데, 11일 외곽에 있는 댐 2곳까지 무너져 대홍수가 발생했다. 국제 적십자사와 적신월사연맹(IFRC)은 "두 댐에서 쏟아져 내린 엄청난 양의 물이 데르나를 덮쳤다. 앞으로 사망자 수는 1만 명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IFRC이 리비아 특사 타메르 라마단은 이재민도 4만 명 넘게 나왔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 등에 올라온 영상에는 흙탕물이 집을 집어삼키자 주민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도움을 청하는 등 아비규환의 모습이 담겼다. 홍수로 강처럼 변해버린 거리에서 차들이 둥둥 떠내려가는 모습도 전해졌다.
리비아 동부 지역 정부 관계자는 "데르나 지역 전체가 물에 휩쓸렸으며 많은 시신이 바다로 떠내려 갔다"고 말했다. 건물 잔해에 깔린 시신도 상당수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현재 시신 수백 구가 공동묘지에 쌓였지만 신원을 파악해 줄 생존자조차 부족하다"고 덧붙였다. 리비아 동부 보건부는 이날 기준으로 시신 1500구 이상이 수습됐으며 이 가운데 절반이 매장됐다고 밝혔다.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피해를 남긴 배경에는 정치 혼란과 기후변화가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혁명 여파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권이 무너진 뒤 동부를 장악한 리비아 국민군(LNA)과 서부의 통합정부가 대립하는 무정부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 까닭에 노후한 기반 시설이 제대로 관리·보수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재난 예측과 경보, 대피 체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현지에선 이번에 붕괴된 댐들을 보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심지어 지난해에는 '큰 홍수가 발생할 경우 댐 두 곳 중 하나가 터지면서 데르나 주민 안전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한 학술지에 실리기도 했다.
AFP 통신과 가디언 등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기후변화가 참사를 초래한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고 본다. 열대성 저기압은 수온이 따뜻할수록 더 큰 위력을 갖는데,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해수면 온도가 과거보다 훨씬 높아졌다는 이유에서다.
영국 정부의 기후변화 관련 회의에 참석한 과학자들은 지중해 동부와 대서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소보다 2∼3도나 높아지면서 “강수량이 더욱 많아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앞서 유럽연합(EU) 기후변화 감시기구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는 올해가 인류 역사상 가장 더운 해가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영국 오픈대학의 환경시스템공학자인 레슬리 메이본은 "기후변화로 극단적 기상 현상이 잦아지고 강해진다고 해도 여기에 가장 취약한 이들은 사회·정치·경제적 요인에 의해 정해진다"고 강조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