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해·태풍 이어 깍지벌레까지… 배 농가 시름 ‘두 배’
진주·하동 등 확산 피해 눈덩이
기형과 비중 높고 당도 떨어져
출하해도 내수·수출 판매 애로
“자연재해 수준 정부 관심 절실”
수확한 배에 묻어있는 깍지벌레 모습.
냉해와 태풍 등 어느 때보다 힘겨운 한해를 보냈던 배 재배농가들이 이번에는 깍지벌레의 습격에 한숨을 내쉬고 있다. 하루 걸러 비가 오다 보니 대응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4일 경남지역 배 농가들에 따르면 최근 경남 진주시와 하동군, 전남 나주시 등 배 주산지에 깍지벌레가 극성을 부리고 있다. 면적이 큰 농가들을 중심으로 깍지벌레가 넓게 퍼져, 너나 할 것 없이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핵과류에 피해를 주는 깍지벌레는 연지벌레로도 불리며, 불과 3mm 안팎의 크기인 탓에 눈에 잘 띄질 않는다. 알에서 깨어나면서부터 서서히 왁스 형태의 물질로 몸을 덮어 보호하기 때문에 농약으로도 방제가 어렵고, 한번 발생하면 과일이 기형이 되고 당도를 크게 떨어뜨려 심각한 피해를 주는 해충이다.
특히 배는 일반적으로 봉투를 씌워 재배하는데, 알에서 나온 깍지벌레가 봉투 안쪽 열매로 이동하기 때문에 더욱 방제가 어렵다. 이에 따라 배 재배 농가는 깍지벌레가 알을 낳는 6월 초중순 주로 방제에 나선다. 밀랍이나 왁스층도 없는 데다 봉지에 들어가기 전을 노리는 것이다.
하지만 올해는 상황이 다르다. 올해 초 냉해를 너무 크게 입은 탓에 과실 대다수가 떨어지면서 적극적인 방제를 할 수 없었다. 여기에 6월 중순부터 역대급 장마가 오면서 적기 방제도 안 됐고, 방제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농민들의 심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이다. 출하 물량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만생종 ‘신고’ 품종은 올해 초 냉해로 인해 지역 별로 적게는 50%, 많게는 70%가 낙과 되는 피해를 입었고 이후 태풍과 장마, 폭염까지 차례로 거쳤다. 수확 가능한 과실도 많이 없는 데다 수확을 해도 기형과 비중이 꽤 높은 편인데, 여기에 깍지벌레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어 농가 입장에서는 답답함이 커지고 있다.
진주의 한 배 재배 농민은 “올해 농사는 아예 망쳤다고 표현하는 게 맞다. 냉해 이후 어떻게든 수확을 해보려고 했는데 재해가 너무 이어져서 포기하는 심정이다. 비가 또 자주 와서 손쓸 방법도 없다. 이렇게 피해가 큰 건 올해가 처음”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깍지벌레가 있는 수확물은 일단 먹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긴 하지만 확산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공판장에 가져갈 수는 없다. 농가 입장에서는 수확 후 깍지벌레가 있는지 하나하나 꼼꼼하게 검사를 해야 하다 보니 작업량이 크게 늘어나고 판매고도 떨어진다. 수출은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깍지벌레는 캐나다를 비롯해 대다수 배 수입국의 주요 검역대상 병해충이다. 검역 수준이 국내 공판장 대비 강할 수밖에 없는데, 조금이라도 깍지벌레가 발견될 경우 수출 물량 대다수가 국내로 반송된다. 수출농단은 이미 해외 수출 물량 계약을 마친 상태지만, 당장 수확량이 부족하고 깍지벌레까지 기승을 부리다 보니 계약조건을 맞추기 힘든 실정이다.
한 수출배 농가는 “이 정도면 자연재해 수준이라고 본다. 국가의 관심이 필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글·사진=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