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적 위기의식이 문학과 비평의 본질”
비평가와의 대화 구모룡 편
“1980년대 무크지운동에서
‘지평’과 ‘전망’은 결이 달라”
생산력 약화 지역문학 현실 토로
“살아있는 정신은 시정에 있어”
구모룡(가운데) 비평가를 초청한 <오늘의문예비평>의 ‘1950년대생 연구포럼’의 ‘제3회 비평가와의 대화’. 사회 하상일(왼쪽) 평론가와 발제 이명원 평론가.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비평가 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는 1980년대 이후 부산문학의 뜨거운 중심에 중핵으로, 여전한 현역 비평가로 있다. 지난 5일 <오늘의문예비평>이 기획한 ‘1950년대생 연구포럼’에서 황국명·남송우 평론가에 이어 ‘제3회 비평가와의 대화’에 나선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1980년대 부산문학의 무크지운동을 말할 때 <지평>과 <전망>을 같이 말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지역’을 말할 때 <지평>은 민족과 계급, 변혁과 시대의 관점에서 그것을 말했다면 <전망>은 소극적 소시민적 지방주의라는 한계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지평>의 그러한 관점은 <지평> 3~6집에 이르는 1984~1987년 아주 뚜렷했는데 당시 그 관점을 주도한 비평가가 그 자신이었다. 구모룡은 “당시 5년 동안 나는 신용길 정일근 최영철 등과 늘 현장에 있었다”고 했다.
그 대표적 사례 하나가 1986년 정일근 최영철과 ‘부산경남젊은시인회의’를 통해 본격적으로 전개한 ‘지역문학운동’이다. 당시 또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1985년 요산 김정한이 주도하고, 윤정규가 후배들을 물밑으로 모아 결성한 ‘5·7문학협의회’다. 그는 실천과 비평이 뒤엉킨 가운데 많은 평문을 쏟아낸, <지평>과 ‘5·7문학협의회’의 그 시절이 “여전히 내 가슴 속에 순금으로 빛나는 황금시대”라고 했다. “계간지를 강제 폐간한 전두환 독재의 암울한 시대 상황이 부산문학으로서는 ‘역설적 축복’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1988년 현장을 떠난 그가 보기에, 1987년 6월 항쟁까지 부산문학은 시대와 대결하는 포물선의 꼭짓점을 그려냈으며, 이후 두 무크지는 시 중심 잡지로 변했다는 것이다. 이 지적이 품은 하나의 결은 <전망>에서 <오늘의문예비평>이 나왔다고 하는 통상의 시각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전망>은 계간 <시와사상>으로 이어졌다”며 “<오늘의문예비평>은 <겨례의문학>이란 전 단계를 거쳐 공부하는 이들을 중심으로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자신이 편집주간을 5년간 맡기도 한 <오늘의문예비평>은 이후 ‘문지’ 같은 세대교체 시스템으로 운영됐는데 기복이 없지 않았다고 그는 보고 있다.
구모룡 평론가는 “부산을 두껍고 깊게 천착해야 제대로 된 글, 소설을 쓸 수 있다”고 했다. 부산일보 DB
이날 토론에 나선 평론가 이명원 경희대 교수는 ‘로컬/문학/사상의 구축과 탈구축’이란 제목의 발제를 했다. 구모룡 비평의 특이성이 로컬~사상에 널따랗게 걸쳐 있으면서, 무엇보다 ‘구축’과 ‘탈구축’의 진자운동을 하고 있다는 날카로운 지적이었다.
그 양상으로서 과연 그는 “변증법과 유기론은 나의 비평이 지닌 두 가지 내적 형질로 길항하며 공존한다”고 했다. 그는 1980년대 ‘시대’에서 변증법을 얻었고, 밀양 농촌에서 성장한 바탕과 조지훈 공부에서 유기론을 취하는데 양자의 어느 한쪽을 택하지 않는 모순에 서 있다는 것이다. “과거를 미화하거나 자기를 관리하는 일은 비평이 아니다. 항상적 위기의식이 없다면 이미 비평은 없다”는 구모룡의 천명도 탈구축의 한 양상으로 읽힌다.
이명원은 “젊은 구모룡이 초기에 애독했던 시인과 작가는 김춘수 최인훈 이청준 윤흥길 신경림 김지하 고은 윤후명으로 크게 보면(‘창비’가 아니라), 특히 평론가 김현이 분석적으로 논의한 ‘문지’ 계열의 문인이 많다”고 했다. ‘시대’에 뛰어들었던 구모룡에게 문학적 세례는 ‘지성’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대학 동기인 신용길 정태규, 김춘수의 <의미와 무의미>, 그리고 오래 사숙했다는 한국 근대문학론의 김윤식 등이 그의 문학 입문기에 마구 뒤엉켜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날로 생산력이 약화하는 지역의 문학적 현실을 보면서 한계를 절감한다”고 뼈아프게 토로했다. 젊은 시인들이 알아먹지도 못하는 어려운 시를 남발하며 ‘단독성의 시학’에 매몰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시는(미로 같은 내면과 자기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외부, 타자, 사물, 객체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시 요산 김정한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단다. 요산은 그가 말하는 ‘비판적 로컬리즘’의 한 전범이다. 자기가 사는 곳을 말하지 않고 어느 곳에 이를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디킨스, 모옌 같은 세계문학이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현장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로컬이자, 동아시아요, 세계라는 것이다. “부산을 두껍고 깊게 천착해야 제대로 된 소설을 쓸 수 있다.”
그는 “1990년대 이후 한동안 어정쩡한 모습으로 문학에서 문화로 배회한 지난 시간을 후회한다. 문학에 더 충성하지 못한 자신을 비판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역, 로컬은 오로지 붙들고 왔다는 것이다. 그는 “지역을 1980년대에는 일국 차원, 전 지구적 자본주의가 횡행하던 1990년대에는 동아시아 담론, 21세기에 들어서는 세계문학 차원으로 열어가고 있다”며 자신의 비평 속에 지역을 심화시켜 왔다고 말했다. 과연 로컬은 무엇인가. 그는 말했다. “지금도 나는 살아있는 정신은 시정(市井)에 있다고 생각한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