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화약고’ 폭발… 전쟁 공포, 세계 안보까지 위협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
가자시티 하루 만에 폐허 변해
병원 바닥 시신 안치 ‘아수라장’
중동 평화무드 ‘찬물’ 해석 분분
50년 전 기습공격 ‘악몽’ 되살려
8일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주민들이 전날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무너진 건물 앞을 걷고 있다. 이날 하마스의 기습 공격과 뒤이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양측 모두 합쳐 550여 명이 사망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통치하는 무장정파 하마스의 7일 새벽(현지 시간) 기습 공격에 대해 이스라엘은 ‘전면전’을 선포하며 강력한 보복에 나섰다. 이에 더해 레바논에 기반을 둔 이슬람 무장조직 헤즈볼라까지 이스라엘 공격에 가세하면서 중동 전쟁으로 확전되는 양상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복잡한 관계 속에 둘러싸인 중동의 오랜 화약고까지 터지면서 세계 안보가 위협받고 있다.
■폐허 된 가자지구…쉴 새 없는 통곡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이날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대규모 무력 충돌로 하루 만에 폐허가 된 가자시티의 참상을 전했다. 유대교 안식일이자 토요일인 이날 가자지구에서 가장 큰 병원인 시파병원 영안실에는 이스라엘에서 돌아온 전사자들 시신이 끊임 없이 옮겨졌다. 오후가 되자 시신을 보관할 냉장고가 남지 않아 병원 바닥에 시신이 안치됐다. 그런데도 사망자와 부상자, 그들의 가족이 계속 몰려들었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은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으로 최소 300명이 숨지고 1860여 명이 다쳤다고 집계했다.
공습이 더욱 거세질 것이라는 우려에 주민들은 등교가 중단된 학교 건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슈퍼마켓과 빵집, 약국에는 사재기하는 발길이 이어져 진열대가 이미 텅 비었다. 가자지구 북부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공습을 피해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북부 국경지대에 사는 움 모하마드 아부 자라드(35)는 폭발음에 잠에서 깨보니 자녀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집에서 도망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중동 평화 무드였는데 갑자기 왜?
하마스가 민간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잔혹한 방식의 기습 공격을 감행한 속내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칼리드 카도비 하마스 대변인은 아랍 매체 알자지라에 “국제사회가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리고 알아크사 같은 성지에 대한 (이스라엘의)만행을 중단시켜 달라”며 “이 모든 것이 이번 전투를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고 보복 공격으로 팔레스타인도 인적, 물적으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스라엘 탄압이 이유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 인터넷 매체 복스는 하마스의 공격 배경을 확신할 수 없다며 여러 요인 가운데 하나로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움직임을 꼽았다.
일부에서는 하마스의 이번 공격의 배후에 이란을 위시한 이슬람 시아파 세력이 있을 수 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이란이 사우디를 위시한 수니 아랍권과 이스라엘의 친밀 모드가 자국 안보와 지정학적 입지를 위협한다며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략적으로 수니파인 하마스를 지원해온 이란 고위 당국자들은 이번 사태 발발 직후 “자랑스러운 작전”이라며 하마스 지지 목소리를 냈다.
미국의 중재로 추진돼 온 이스라엘과 아랍 진영의 화해 움직임인 이른바 ‘중동 데탕트’는 순식간에 얼어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미 CNN방송은 이날 전쟁 시작과 관련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중동 평화 구상에 차질을 빚을 수 있는 악재를 만났다고 평가했다.
■50년 전 4차 중동전쟁 판박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무장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무력 충돌은 50년 전 발생한 이른바 ‘욤키푸르 전쟁’, 4차 중동전쟁과 닮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은 이날 하마스의 이번 기습 공격은 50년 전의 이 ‘악몽’이 반복된 것과 같다고 분석했다. 두 전쟁 모두 유대교 명절에 발생한 데다 상대의 기습 공격을 예측하지 못한 이스라엘 정보기관 측 책임론이 제기된다는 점이 비슷하다는 것이다.
1973년 10월 6일 중동에서는 이집트와 시리아가 이스라엘을 기습하면서 욤키푸르 전쟁으로 불리는 제4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유대교 주요 명절 중 하나인 ‘속죄의 날’이었던 이날 이집트와 시리아 군대가 무방비 상태인 이스라엘을 침공하면서 19일간 전쟁이 이어졌다.
기습 직전 이집트와 시리아의 대규모 병력이 이스라엘 국경 인근에 모였으나 이스라엘 지도부는 이들이 공격을 감행할 가능성을 일축했다. 일하지 않고 금식 등을 통해 죄를 회개하며 용서를 실천하는 날인 속죄의 날에 아랍국가가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이스라엘 정보기관의 대표적 정보 실패 사례로 기록됐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군 2656명이 숨졌고 7251명이 다쳤다. 전쟁 포로도 294명에 달했다.
그로부터 50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팔레스타인 하마스가 유대교 안식일 새벽 시간에 이스라엘을 겨냥한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