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칼럼] 모두 서울에서 살으렵니까
의료 문제 서울 편중적 사고 우려
전국 지역신문 일제히 절박한 사설
지방 로스쿨 졸업생도 다 수도권행
서울은 지방에서 단물만 빨아먹나
민주당, 갈수록 수도권당 ‘유감’
노무현 균형발전 정신 되새겨야
서울 시내의 한 의과대학. 연합뉴스
‘종이 울리네 꽃이 피네/새들의 노래 웃는 그 얼굴’로 시작하는 노래가 있다. ‘아름다운 서울에서/서울에서 살으렵니다’로 끝을 맺는다. 길옥윤이 작사·작곡하고 패티김이 부른 ‘서울의 찬가’다. 부산시장을 거쳐 ‘불도저 시장’으로 이름났던 김현옥 서울시장이 1966년 서울에 대한 희망적 메시지를 담은 노래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2000년대 초까지도 새마을호 열차가 서울역에 도착하기 직전, 안내방송과 함께 이 노래가 나왔다.
‘서울에서 살으렵니다’는 여전히, 너무나 유효하다. 서울에서 대학을 나왔거나 혹은 서울에서 취직했다면 다시는 지방으로 돌아오려고 하지 않는다. 손자·손녀를 봐 주기 위해 서울로 간다는 분들도 곧잘 만나게 된다. 한국관광공사 부사장이라는 사람이 부산을 촌동네라고 비하 발언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다. 관광은 익숙함에서 벗어나 낯섦을 체험하는 행위이다. 어느 나라나 비슷비슷한 서울만 보여 주면 된다는 생각은 관광을 너무 모르는 말이다.
우리가 아무리 촌동네라는 말에 욱해도 부산에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그 일자리를 찾아 청년들이 빠져나가 소멸을 걱정하는 처지는 엄연한 사실이다. 아이를 위해 부모는 ‘소아과 오픈런’을 해야 하고, 큰 병에 걸리면 무조건 서울로 가야 한다는 조언이 일반적이다. 지방에선 결혼도, 낳기도, 키우기도, 병들어도 힘들다면 답은 뻔하다. 이런 사정을 고려할 때 지역·필수 의료를 위한 의료인력 확충을 목적으로 의대 정원을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상징적이다.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문재인 정부 때 떠들썩하게 시작했지만 의사단체의 반발에 주저앉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에도 논란이 치열한 가운데 서울시의사회는 서울을 본사로 하는 일간지에 전면 광고를 내고 반대의 선봉에 섰다. 의과대학 정원 1000명 확대에 대한 논의는 무분별하고, 의사 수를 늘리면 피부·미용 의사만 늘어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에서는 의료 문제의 서울 편중적 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넘쳐난다. 각 지역 신문에 난 사설 제목을 살펴봤다. ‘의료격차 해소 못 하면 지역 소멸 막을 수 없다(강원일보)’, ‘지방의대 증원 100% 지역 인재로 뽑아라(경북일보)’, ‘전남은 의대 없는 유일 지역…30년 숙원 풀어 달라(광주일보)’, ‘국립 의대 신설은 충남도민의 생사가 걸린 문제(충청투데이)’ 등으로 지방은 절박하다.
로스쿨도 상황은 비슷하다. 비수도권 대학 로스쿨의 경우 최근 5년간 전체 신입생 중 81%가량이 수도권 대학 출신이라고 한다. 이들은 졸업 후 수도권으로 떠나기 일쑤여서 다른 지방에 비해 사정이 나은 부산 변호사업계조차 구인난을 호소하고 있다. 이쯤 되면 서울은 지방이라는 식민지에 빨대를 꽂아 단물만 빨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강준만 교수가 2015년에 〈지방 식민지 독립선언〉을 세상에 외쳤지만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최근 헌법재판소가 지역정당 설립을 금지한 정당법 전국정당조항에 대해 다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정당법 3조와 17조는 정당 설립 요건으로 수도 소재 중앙당과 5개 이상의 시·도당을 갖추도록 규정하고 있다. 미국, 독일, 일본 등 대체 어느 나라에 이런 조항이 있는지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런데도 합헌 의견을 낸 재판관들은 “우리나라의 지역 연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정당정치 풍토 현실에선 지역정당을 허용하면 지역주의를 심화하고 지역 간 이익갈등이 커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누가 봐도 한국 정치에서 지역주의를 심화시킨 주역은 적대적 거대 양당이 아니었던가. 한숨이 나오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릴 수는 없다. 2006년 유사한 헌법소원심판청구에서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은 현행 정당법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번에는 재판관 과반(5명)이 위헌 의견을 내서, 위헌 결정을 위한 정족수(6명)를 겨우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끝으로 내년 총선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는 더불어민주당에 한마디 하고 싶다. 민주당은 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니, 산업은행도 서울에 있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나오도록 왜 방치하는가. 우주항공청특별법 처리를 두고 시간만 끄는 모습도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국 기업의 도움으로 위성을 만들던 아랍에미리트(UAE)가 2021년 탐사선을 화성 궤도에 진입시켰다. UAE가 일찌감치 2014년 우주청을 설립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최병천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지금 민주당은 사실상 수도권당이다. 그렇다 보니 의원들도 국회 의석의 절반이 비수도권이라는 걸 잊는다”라고 지적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선거를 의식해서 정책을 급조해서도 안 되지만 선거 때문에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미뤄서도 안 된다”라고 말했다. 지금 민주당은 과연 노무현의 후예들이 맞는가.
박종호 수석논설위원 nleader@busan.com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