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희와 함께 읽는 우리 시대 문화풍경] 트롬보니스트 박태식의 음악사랑
부산대 대학원 예술·문화와 영상매체협동과정 강사
나눌락 라이브락 파쿠파쿠 공연. 남영희 제공
트럼펫, 트롬본, 호른, 튜바는 금관악기다. 전쟁이나 사냥에서 신호용으로 사용했던 동물의 뿔이나 소라껍데기가 이들의 기원이다. 악기 구조는 비교적 간단하다. 기다란 금속관 끝에 깔때기 모양의 벨(bell)이 소리를 확산한다. 범박하게 말하자면, 긴 금속관을 둥글게 말아놓은 악기가 호른, 짧게 여러 번 접은 악기가 트럼펫, 길고 성글게 접어놓은 악기가 트롬본이다. 오늘날에는 마우스피스와 약음기를 장착하거나 밸브나 피스톤과 같은 음정 조절 장치를 달아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트롬본은 손으로 관의 길이를 늘였다 줄였다 하는 슬라이드 조작으로 음정을 표현한다.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이나 ‘로엔그린’ 제3막 전주곡에서 트롬본 여럿이 일제히 슬라이드를 조작할 때면 조명을 받은 악기가 빛을 뿜어내는 듯한 멋진 광경을 연출한다. 음악을 ‘보는’ 즐거움이 아닐 수 없다. 바그너 곡에서는 웅장한 음색을 자랑했지만, 트롬본의 표현력은 넓고 다양하다. 헨리 필모어의 경쾌하고 익살스러운 ‘라수스 트롬본’은 트롬본 글리산도의 흥취를 한껏 살린 곡이다. 트롬본이 마칭밴드나 재즈 연주에서 빠질 수 없는 이유다.
지난 23일 부산 해운대구 재송동 나눌락에서 열린 트롬보니스트 박태식 연주회를 찾았다. 여든을 훌쩍 넘긴 연치에 관악기를 연주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남달랐다. 트롬본을 새긴 티셔츠를 무대의상으로 갖춰 입었다. 재즈와 보사노바, 삼바로 꾸민 프로그램에 피아노 박선영, 타악기 김은호, 베이스 김선훈, 보컬 박은정이 함께했다. “여러분이 계시니 나발 소리가 잘 안 나네!” 단 하루도 손에서 트롬본을 놓지 않았건만 연주란 늘 녹록하지 않다. 간혹 음을 놓치고 음정이 흔들렸어도 객석은 이 계절만큼이나 깊은 감동으로 충만했다.
2022년 늦가을, 학술연구용역 ‘부산에서 활동한 음악가들’의 구술채록 대상자로 그를 만났다. 박태식은 1937년 인천에서 태어나 한국전쟁기 마산으로 피란했다. 마산공고 악대부에서 처음으로 트롬본을 잡았다. 부산 하야리야부대 전속악단에서 연주하다 서울 화양흥업 소속 쇼단으로 미8군 무대를 누볐으며, 김인배의 뉴스타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그만큼 실력이 출중했다. 1970년대 말 부산MBC관현악단에서 연주와 편곡을 맡으면서 부산에 정착했다. 면담 당시 한평생 묻어두었던 부친의 존재를 밝히기도 했다. 1947년 인천관현악단을 설립한 박수득이다. 한국전쟁기 북으로 갔기에 쉽게 말할 수 없었던 이름이었다. 그에게 트롬본이란 시대의 굴곡과 삶의 파란을 건널 수 있었던 힘이 아니었으랴. 지금도 한결같다. 그의 카카오톡 배경 사진에서 음악적 열정과 자부심을 읽는다. ‘늙은 트롬보니스트를 얕잡아 보지 마시라(Never underestimate an old man with a trombo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