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국민의힘의 이상한 포퓰리즘 정치
이동수 청년정치크루 대표·공모 칼럼니스트
모두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쉽게 추진할 수 없는 정책들이 있다. 연금 개혁은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이슈다. 국민연금 기금이 2055년 언저리에 고갈될 예정이라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게 미래 세대에게 큰 부담을 주고 우리나라 경제를 압박하리라는 것도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누구 하나 이런 국민연금을 뜯어고치자고 총대 메지 못한다. 지금보다 많이 내고 적게 받는 쪽으로 연금을 개혁하자는 데 동의할 국민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시도조차 않고, 윤석열 정부도 말만 있을 뿐 구체적 계획을 내놓지 않는 건 거기에 따르는 민심 이반이 두려워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책임감 있는 정치인인 것 같다. 그는 2017년 집권하자마자 구조개혁을 천명하고 노동 유연성 제고, 공공 일자리 감축, 연금 개혁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이듬해엔 유류세 인상을 발표했다가 전국에서 ‘노란 조끼 시위’가 일면서 지지율이 폭락하기도 했다. 하지만 마크롱은 구조개혁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다. 2022년 대선에서도 연금 개혁을 공약으로 들고나왔다. 국민 70%가 반대했지만 헌법에 보장된 바에 따라 입법 절차를 건너뛰고 개혁을 밀어붙였다. 결국, 올해 초 정년 및 연금 수령 연령을 62세에서 64세로 늦추는 제도 개혁을 이뤄냈다.
정치 혐오 포퓰리즘 정치 시대 초래
기성 정치권 무능에 극우 정당 득세
국민 요구에 기댄 긍정적 면도 있어
‘메가서울’ 다수 국민 반대하는 이슈
국가균형발전 기조 단숨에 엎어 버려
지역 반감과 논란만 키운 ‘4류 정치쇼’
마크롱도 마크롱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편에 있는 르펜의 행보도 눈에 띄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2022년 대선에서 민생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며 마크롱의 뒤를 바짝 쫓았다. 20%에 달하는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를 공약했고, 기저귀·소금 등 생필품 가격도 낮추겠다고 약속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물가가 치솟던 시기, 구매력 저하로 고통받던 사람들이 그의 공약에 반응했다. 아버지 장마리 르펜 시절 국민전선(FN)이 백인우월주의와 반이민 정서에 의존했던 꽉 막힌 극우 정당이었다면, 딸 마린 르펜 시대의 국민연합은 포퓰리즘이라는 무기를 탑재한 영리한 극우 정당으로 변모했다. 2017년 대선보다 절반으로 줄어든 마크롱과의 득표율 격차(32.2%→17.08%)는 그 결과다.
바야흐로 포퓰리즘 정치의 시대다. 자본과 노동력의 이동이 자유로워지면서 서민들이 일상에서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확대되었다. 그런데 기성 정치권은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도 실력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서 비롯되는 불안과 분노를 세계 각지의 극우 정당들은 집요하게 공략했다. 밖으로 나간 기업을 불러들이고, 밀려 들어오는 이민자를 막으며, 각종 비용을 깎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는 휴지 조각이 된 자국 화폐를 미 달러로 대체하겠다고까지 했다. 고된 삶에 지친 세계 시민들은 사이다처럼 시원한 극우 정당의 약속에 높은 지지로 화답했다.
포퓰리즘의 우리말은 ‘대중주의’ 혹은 ‘대중영합주의’,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대중이 본질이라는 점에서는 같다. 개인적으로 포퓰리즘 정치가 꼭 나쁘다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는 국가와 사회를 병들게 하는 고약한 주장들도 있지만, 국민의 요구에 부합하는 정치를 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인 기능도 있다. 특히 우리 정치가 검찰 개혁이나 홍범도 장군 이념 논란처럼 그동안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이슈들로 혐오를 키워 온 현실에 비춰 보면, 포퓰리즘은 어느 정도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서 탱자가 된 건지, 우리나라의 포퓰리즘 정치는 영 어색하다. 국민의힘 지도부가 느닷없이 꺼내 든 김포의 서울 편입 이슈가 그렇다. 찬성하는 사람보다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많은 포퓰리즘 정책은 처음 봤다. 설령 모든 김포 시민이 이 공약에 찬성한다고 해도 서울을 비롯한 나머지 수도권에서 이를 환영할 리 없다. 여당 소속인 유정복 인천시장부터가 “정치쇼”라고 비판하고 있지 않나. 수십 년 이어져 온 국가균형발전 기조를 단숨에 바꿔버린 무모함은 비수도권 지역의 박탈감만 키웠다. 가뜩이나 모든 자원이 몰린 서울을 더 키워서 ‘메가서울’을 만들겠다는 건 단어부터가 ‘역전 앞’이나 ‘잘생긴 미남’처럼 모순적이다. 이것 때문에 대통령실이 제기한 은행의 약탈적 금리나 플랫폼의 높은 수수료 문제가 묻힌 것도 아쉽다.
어떤 정치가 좋은 정치일까.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더라도 국가와 사회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이루는 정치는 단연 일류로 평가받아 마땅하다. 국민의 기대와 요구에 기민하게 반응하는 포퓰리즘 정치도 그다음인 이류는 될 것이다. 그런데 메가서울 공약처럼 누가 원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다른 지역 반감만 키우면서 논란을 키우는 이상한 정치는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의 말마따나 ‘4류’는 될까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