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사람 잡는 로봇·AI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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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잡는 로봇. SF 영화에 나오는 최첨단 전투무기인 살상용 로봇이나 인류와 전쟁을 벌이는 휴머노이드 로봇의 반란 얘기가 아니다. 로봇이 실제로 사람을 죽이는 비극이 늘고 있는 게 엄연한 세계적 현실이다. 44년 전에 이미 사람이 로봇 때문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1979년 미국 포드자동차 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속도가 느려진 기계를 손보려다 부품 운반용 1t짜리 로봇 팔에 맞아 숨졌다. 1920년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가 쓴 희곡 〈로숨의 유니버설 로봇〉에서 로봇이란 용어가 처음 등장한 이후 세계 최초로 로봇에 의해 일어난 사망사고였다. 2년 뒤 일본 가와사키의 한 중공업 공장에서도 고장 난 로봇을 점검하던 정비원이 로봇에 받혀 목숨을 잃었다.

1980~90년대부터 제조업의 시설 자동화 붐을 타고 산업용 로봇 도입이 급증했다. 생산성 향상과 인건비 절감으로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로봇의 오작동과 사람의 부주의로 로봇 관련 산재가 늘어난 부작용도 크다. 미국은 1992~2017년 26년간 작업장 로봇 사고 사망자가 41명이다. 매년 1.6명꼴이다.

우리나라 사정은 더욱 심각하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지난해 공개한 최근 5년간 산업 로봇 사고 사망자는 16명이다. 2011~2020년 산업 로봇 재해 피해자는 355명으로, 이들 중 29명이 숨졌다. 매년 3명가량이 로봇 탓에 죽는 셈이다. 올해에는 전국에서 4명이 사망했다. 지난 7일 저녁 경남 고성군 농산물 선별장에서 박스를 집어 옮기는 로봇의 상태를 살펴보던 40대 남성이 로봇 집게에 상체가 압착돼 숨졌다. 로봇이 남자를 박스로 잘못 인식해 생긴 참사다.

산업계의 로봇 증가세가 폭발적이어서 로봇 관련 산재를 막을 철저한 관리가 요구된다. 국제로봇연맹에 따르면 2019년 기준 한국 산업 로봇은 총 32만 4049대로, 전년보다 8%(2만 3852대) 늘었다. 2021년 국내 로봇 밀도(노동자 1만 명당 설치된 로봇 대수)는 10년 전보다 3배나 증가한 932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근래 로봇이 인공지능(AI)을 갖추고 고난도 설계 등 지능화된 업무를 하는 일이 많아졌다. 16일 한국은행이 내놓은 보고서는 AI가 국내 일자리의 12%(약 341만 개)를 대체할 것으로 전망했다. 지난해 7월 19일 러시아의 체스대회에서 7세 아동과 겨루던 AI 로봇은 아이의 손가락을 부러트리기도 했다. 로봇과 AI가 편리하고 유용하지만, 확실한 통제가 이뤄지지 않으면 일자리에 이어 인간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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