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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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1960~ )

끈이 있으니 연이다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으며

줄도 손길도 없으면

한낱 종잇장에 불과하리

눈물이 있으니 사랑이다

사랑하니까 아픈 것이며

내가 있으니 네가 있는 것이다

날아라 훨훨

외로운 들길,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멀리 날아 그리움에 지쳐

다시 한 번

돌아올 때까지

-시집 〈사랑을 쓰다〉(2007) 중에서

사랑을 표현하는 말만큼 오묘한 것이 어디에 있을까? ‘끈이 있으니 연’이고, ‘묶여 있으므로 훨훨 날 수 있’다는 말은 사랑의 속성을 알지 못하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문구다. 사랑은 ‘아픔’이면서 기쁨이고, 구속이면서 자유다. 양극단을 아우르게 하는 사랑의 속성이야말로 존재의 비밀을 가장 잘 알게 해주는 표지다.

우리는 사랑이 깊어질수록 외로움도 깊어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아무리 허물없는 사람일지라도 ‘너는 이 길로 나는 저 길로’ 각자 ‘외로운 들길’을 걸어가야만 하는 단독자의 운명을 사랑으로, 그 사랑의 깊이로 인해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인연의 ‘끈’은 운명의 여신이 가진 얼레에 의해 느슨하게 풀렸다 감기고, 다시 풀렸다 감기면서 존재의 무한 반복을, 윤회의 그 나선형적 전진을 펼쳐 보인다. 고로 사랑은 지고한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이번 생의 영적 단련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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