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윤흥신 장군 동상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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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다대포는 조선 시대 경상좌수영 서단의 수군 기지가 있던 곳이다. 경상좌수영은 우수영과 경계를 이루는 낙동강 동측 지점부터 동해안의 경북 영덕 지역까지를 관할했다. 본영인 동래현 부산포 예하에 여러 개의 진(鎭)이 있었는데, 초기 11개였다가 1895년 폐지될 때는 5개로 줄어든 상태였다. 마지막까지도 빠지지 않았던 곳이 다대포진이다. 그만큼 군선의 정박지로서 중요한 국방의 요지였기 때문이다. 정3품 수군절도사 바로 아래인 종3품 수군첨절제사에게 막중한 방비의 책임을 맡긴 것도 그런 이유다. 지금도 다대포항 너머 몰운대에 오르면 낙동강 하구와 가덕도가 한눈에 들어오는데 그 지형적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은 부산진성을 무너뜨린 뒤 곧바로 다대포진을 공격했다. 다대첨사 윤흥신 장군은 새카맣게 몰려오는 왜군 선단의 엄청난 규모를 보고 어떤 생각을 했을까. 장군은 군사들과 함께 성을 도망치듯 빠져나오는 계략을 세운다. 왜군들이 성을 점령한 것으로 방심하게 만든 뒤 다시 성으로 쳐들어가 적들을 도륙하려는 것이었다. 그렇게 1차 전투는 승리했으나 이튿날 다대성은 중과부적으로 함락되고 만다. 당대 문신 구사맹은 ‘군졸이 모두 도망했고 (장군) 홀로 종일토록 활을 쏘다가 성이 함락되면서 죽었다’고 당시 상황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다대포진 싸움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에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이를 알린 이는 일본에서 고구마를 들여온 것으로 유명한 경상감사 조엄이다. 영조 때 조선통신사 사절단으로 일본에 갔다가 윤 장군의 전투 이야기를 전해 듣고 관련 공적과 자료를 찾아 조정에 올린 것이다. 그때까지도 충렬사에는 동래부사 송상현과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만 제단에 올려져 있었다. 윤 장군이 뒤늦게나마 충렬사에 배향된 것은 조엄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게 윤 장군은 동래성의 송상현 부사, 부산진성의 정발 장군과 함께 부산의 임란 3대 명장으로 이름을 올리는 계기가 됐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윤 장군의 석상이 동상으로 재탄생한다는 소식이다. 부산시와 해당 지자체가 종친회 요구를 받아들여 관리·예산 문제의 해법을 찾은 결과다. 하지만 지역 역사학계는 여전히 이견을 보인다. 윤 장군을 제대로 기리려면 기존 석상을 결사 항전의 현장인 사하구 다대동으로 이전하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이번 재단장 작업이 철저한 사전 연구·검증 절차에 소홀함이 없었기를 바란다. 제막식은 26일 오후 2시에 열린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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