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비효율을 선택할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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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은 공모 칼럼니스트

정부, 무전공 입학정원 확대 추진
융합형 인재 육성 취지에 공감
다만 대학은 취업 준비 목적보다
진로 고민하고 원하는 공부 찾는
값진 인생 경험의 현장 되어야
사회 전반이 함께 변하는 게 중요

청년들의 각양각색 고민이야 그 유형이나 깊이가 참으로 다양하겠지만, 꼭 빠지지 않는 게 있다면 ‘진로’에 대한 부분이 아닐까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취업하는 청년이나 대학에 입학하는 청년 모두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진로탐색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에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진로탐색 기간이 충분치 않은 것도 문제지만, 어떻게 진로탐색을 해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는 점도 문제다. 고등학교 생활은 가만히 앉아 공부만 하기에도 버겁고, 그 기간 동안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 탐색할 방법을 알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 나는 무전공 입학제도를 제공하는 대학에 입학했다. 1년간 다양한 전공과목을 들어볼 기회를 제공하고, 2학년부터 학부를 선택해 공부할 수 있게 하는 대학이었다. 학부를 몇 번이고 계속 바꿀 수 있고, 전공 변경에 대한 조건을 달거나 페널티를 주지 않는 곳이었다. 그것도 문과나 이과에 대한 구분 없이 말이다. 오히려 선택의 폭을 너무 넓혀서인지 전공을 쉽게 정하지 못하는 학생들도 많았고, 계속 전공을 바꾸느라 학교를 오래 다니는 학생들도 많았다. 농담과 진담을 반씩 섞어 “좋긴 한데, 너무 비효율적이다”라는 말이 오갔던 기억이 있다.

최근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무전공 입학정원 확대 정책’ 예찬론을 듣다 보니, 자연스레 대학생 때 기억이 났다. 이 장관은 대학교에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전공 자율선택제를 확대하자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회 각 부문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빅블러(Big Blur)’ 시대에 한 가지 전문성을 강화한 인재뿐 아니라, 융합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게 이 장관의 주된 논지다. 또한 그동안 한국의 고등교육이 학과별, 전공별로 구분되어 있어 학생들 전공 선택이 유연하지 못했다는 이유도 있다. 문과와 이과로 나뉜 교육과정을 볼 때, 진로탐색 기회를 충분히 갖지 못한 대한민국의 일원으로서, 이 지점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전공 제도가 정답’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 장관의 논지는 결과 중심적인 접근이고 너무 이상적이다. 무전공으로 입학한 모든 학생들이 문·이과를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다양한 전공을 선택하고 고민하느라 시간을 지체하고 결국에는 문과 또는 이과 한 가지 전공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다가올 빅블러 시대에는 다양한 산업 간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예측이 나오고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전문직은 한 가지 유형의 전문 지식이 필요하고 관련 경험과 자격이 중요하다. 대학에서 다양한 전공을 배우고 조합했으면 사회로 나아가 활용해야 하는데, 그만한 밭이 마련되어 있지 않으면 써먹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정부가 추진 중인 무전공 입학제도는 입시에서 입학정원의 4분의 1(25%)가량을 ‘자유전공학부’나 ‘광역선발’로 선발한 대학은 그렇지 않은 대학보다 국고 인센티브를 더 많이 가져가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등급 간 차이가 20억~30억 원에 이른다고 하니, 이 제도는 대학의 자율화를 추구하지만 역설적으로는 의무성을 띤다. 자율을 추구한다고 말하면서도 접근 방식은 의무적이라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다만 무전공 입학에 대한 여러 우려와 걱정에도, 경험자로서 무전공 입학을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딱 한 가지 때문이다. 적어도 문·이과 상관없이 듣고 싶은 전공을 마음껏 들을 수 있는 대학 생활 동안,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갈지 상상해 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경제학도 들어보고 국제 정세도 공부하고 문학도 공부하고 법 수업도 들어보면서 내가 성장할 수 있는 방향에 대해 고민하고 상상했다. 대학을 단순히 취업 준비의 단계로 생각하지 않고, 공부하고 고민하는 곳으로 대할 수 있었던 값진 시간이었다. 그게 비효율적이라고 말한다면, 맞는 말이다.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진로를 정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하면 뒤처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간이 없었더라면, 안 그래도 진로 때문에 흔들리는 시기에 더 많이 흔들리고 후회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간이 값지다고 생각하는 이유다.

무전공 입학제도를 도입하고 확대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대학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이 변해야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에서도 학생들이 다양한 진로를 생각할 수 있도록 참여의 기회를 많이 열어주고,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폭넓은 분야에 진출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사회 전반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이런 비효율을 택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귀한 한 학기를 불확실성에 투자하고, 노력을 쏟고, 수많은 돌다리들을 두드려보고 건너보는, 그런 비효율적인 용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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