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사 계곡에 고색창연한 문화재급 ‘사하촌 댐’ 있다 [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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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 ①용성댐

범어사 정수장 연계해 건설
90여 년 만에 지난해 첫 공개
주변 일대 아름다워 선계 풍경
댐·정수장 시설, 문화재 추진

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

최근 요산 김정한 작품 53편을 모두 아우른 문학지도가 요산문화연구소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 지도에는 요산 문학의 의미를 깊게 새기는 문학사적 장소들이 많다. 그중 가장 두드러진 세 곳의 특별한 장소를 ‘재발견 요산 문학 장소’란 이름으로 소개한다.

일제강점기 1932년에 완공된 범어사 계곡 용성댐은 요산 김정한의 등단작 ‘사하촌’에 나오는 ‘제2 저수지’의 바로 그 댐이다. 일제강점기 1932년에 완공된 범어사 계곡 용성댐은 요산 김정한의 등단작 ‘사하촌’에 나오는 ‘제2 저수지’의 바로 그 댐이다.

1> 용성댐

부산 금정구 범어사정수장 인근 범어사 계곡에 문화재급의 고색창연한 댐이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성지곡수원지 댐의 미니 축소형 같은 이 댐은 1932년에 완공됐다. 이 댐이 바로 요산 김정한의 1936년 등단작 ‘사하촌’에 나오는 문제의 ‘수도 저수지’ 혹은 ‘제이 저수지’ 댐이다. 일명 ‘사하촌 댐’으로 부를 만하다. 부산 사람이 쓴 최초의 소설 ‘사하촌’의 숨겨진 현장, 문학사적 장소가 바로 이 댐이다.

용성댐 외벽을 수량이 넘치는 물이 하얗게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용성댐 외벽을 수량이 넘치는 물이 하얗게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

작품에 다음과 같이 분명히 나온다. ‘수도 저수지의 물을 터놓은 것이다. (중략) T시 수도 출장소에서도 작년처럼 또 폭동이나 일어날까 두려워서, 저수지 소제도 할 겸 제이 저수지의 물을 터놓게 된 것이다.’ 작품 속에서 이 저수지는 그 아래쪽 ‘성동리’ 사람들의 농사를 좌지우지하는 수원지다.

그동안 이 댐이 알려지지 않은 것은 지난해 초 일반에 처음 공개됐기 때문이다. 그간 수원지 시설로 철조망과 펜스 안에 묶여있다가 90여 년 만에 공개된 것이다. 이 댐은 인근 범어사정수장과 함께 묶이는 관련 시설로 일제강점기인 1927년 착공해 1932년 준공됐다. 작품 속에서도 댐이 그 연도에 만들어졌다고 서술돼 있다. ‘물 좋던 성동들도 삼 년 전 소위 수도 수원지(水源池)가 생기고는…’.

이 댐의 저수지를 ‘제2 저수지’라고 부르는 것은 ‘제1 저수지’인 양산 법기수원지와 연계한 명칭이다. 일제는 구덕수원지, 성지곡수원지로도 부산부(釜山府)의 물 공급이 부족해지자 수영강 상류인 양산 법기에 수원지를 만든다. 법기수원지 물을 부산부에 공급하기 위해서는 긴 거리의 중간에 정수장 축조가 필요했는데 그렇게 만든 것이 범어사정수장이었다.

범어사정수장을 만들면서 바로 옆에 댐을 축조해 범어사 계곡물을 추가로 확보하는 제2 저수지를 조성한 것이었다. 이 댐을 만들 당시 청룡·노포·남산·구서·장전리 농가 주민들이 농업용수 공급에 차질을 빚는다며 크게 반발했는데 그런 사정이 요산의 등단작 ‘사하촌’에 반영돼 있다고 할 수 있다.


용성댐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있는 ‘용성계곡 산수화 그림터’ 안내판. 용성댐 들어가는 길 초입에 있는 ‘용성계곡 산수화 그림터’ 안내판.
용성댐 들어가는 길. 70~80m쯤 되는 이 길의 끝에 용성댐이 나온다. 용성댐 들어가는 길. 70~80m쯤 되는 이 길의 끝에 용성댐이 나온다.
용성댐 옆에 있는 댐 안내판. 용성댐 옆에 있는 댐 안내판.

이 댐은 그 옛 명칭이 ‘범어사 석언제(石堰堤)’였으나 현재는 ‘용성댐’으로 불리고 있다. 댐이 있는 계곡 인근(범어사 방향으로 서서 바로 왼편)에 용성마을이 있어 범어사 계곡을 아예 용성계곡으로 부르는데 그 계곡에 있다고 용성댐으로 불리는 것이다. 그런데 용성은 한국 근대불교의 선지식으로 범어사에 주석한 백용성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범어사 계곡이 아예 용성계곡으로 불리며, 거기서 용성댐 이름까지 나왔다는 것이다.

이 일대의 풍경은 그윽하고 아찔하다. 커다란 암석이 쏟아져내릴 듯한 범어사 계곡 자체부터 수려하며, 댐이 있는 곳은 그중 백미에 해당한다. 댐 아래쪽,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 위에서 바라보면 댐 외벽을 수량이 넘치는 물이 하얗게 타고 흘러내리는 모습은 선계의 풍경처럼 보이기도 한다. 용성댐 일대는 지난해 공개되면서 수묵화의 한 장면 같다며 ‘용성계곡 산수화 그림터’로 호명됐다. 10년 전 조성한 ‘범어사 문화체험 누리길’에 포함돼 그 길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범어사정수장 안의 오래된 소나무. 범어사정수장 안의 오래된 소나무.
범어사정수장 안의 오래된 히말라야삼나무. 범어사정수장 안의 오래된 히말라야삼나무.
최영찬 범어사정수장 지소장이 법기수원지 물이 도착하는, 정수장 내 착수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1932년 준공 당시의 시설 그대로 모습이다. 최영찬 범어사정수장 지소장이 법기수원지 물이 도착하는, 정수장 내 착수지 시설을 설명하고 있다. 1932년 준공 당시의 시설 그대로 모습이다.

최영찬 범어사정수장 지소장은 용성댐의 문화재적 가치에 방점을 찍는다. 그는 “직사각형 화강암을 20여 단으로 균일하게 쌓아 올리고 그 위에 다리 모양의 콘크리트 가설물을 설치한 용성댐은 그 자체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며 “그뿐만 아니라 범어사정수장은 부산 최초의 정수장으로 건설 당시의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귀한 곳이어서 용성댐을 포함해 문화재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용성댐 물을 범어사정수장으로 끌어와 식수로 공급한 것은 지난 2000년까지였다. 그때 용성댐과 정수장을 잇는 도수관로(배관)는 잠갔다고 한다. 용성댐 물은 68년간 식수로 공급된 셈이다. 더 이상 식수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현재 댐 저수지에는 계곡 위쪽에서 밀려 내려온 토사가 가득 쌓여 있는 상태다.

용성댐은 ‘사하촌’을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방향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부산대 교수인 이재봉 요산문화연구소장은 “용성댐의 발견으로 ‘사하촌’을 새로운 각도로 볼 수 있게 됐다”며 “소작 농민과 범어사의 갈등이란 기존 시각의 바탕에 수원지 공사를 강행한 일제 당국이 있다는 사실을 비중 있게 톺아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글·사진=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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