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수협-해경 손잡고 어민 ‘손톱 밑 가시’ 뺐다…어떻게?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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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5대 항만 황산화물배출규제
고황유 다량 사용하는 대형선 타깃
엉뚱한 중형 멸치잡이 업계 발목
자숙기용 중유 황 함량 기준 초과
해경, 부생연료유 2호 ‘C9’ 발굴
면세유 지정까지 석달 만에 해결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가공선에서 본선이 어획한 멸치를 자숙하기 위해 발에 옮겨 담고 있다. 김민진 기자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가공선에서 본선이 어획한 멸치를 자숙하기 위해 발에 옮겨 담고 있다. 김민진 기자

“이런 게 진정한 협업이죠.”

지역 어민단체와 해양경찰이 손잡고 수산업계 ‘손톱 밑 가시’ 하나를 빼냈다. 최근 남해안 멸치잡이 어민들에게 골칫거리로 떠오른 ‘황산화물 배출규제’ 해법을 찾은 것이다. 적극적인 민‧관 협력이 현안 해결과 환경 개선,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았다는 평가다.

경남 통영에 본소를 둔 멸치권현망수협과 통영해양경찰서에 따르면 정부는 2020년 9월 주요 항만지역 대기질 개선을 위해 부산항, 울산항, 여수‧광양항, 인천항, 평택‧당진항 등 5곳을 황산화물배출규제해역으로 지정, 고시했다. 지정 해역에서 해양오염방지협약과 해양환경관리법에 따라 선박 종류나 톤수에 관계없이 연료유 황 함량을 규제하는 게 핵심이다. 경유는 0.05%, 중유는 0.1% 이하다. 위반 시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이는 고유황유를 추진기 연료로 사용하는 초대형 선박을 겨냥한 조처다. 황 함량이 높은 고유황유는 대기 오염 물질을 최대 4500배 넘게 배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형인 멸치잡이 권현망선단이 이 규제에 발목이 잡혔다. 권현망은 멸치 떼를 쫓는 어탐선과 그물을 끄는 본선 2척 그리고 가공선 2척 등 최소 5척이 1개 선단을 이뤄 조업한다. 이들 선단은 그물에 걸린 멸치를 곧장 가공선으로 옮겨 즉석에서 삶는다. 권현망 특유의 선상 자숙 과정이다. 문제는 물을 끓이는 데 사용하는 연료가 중유라는 점이다. 황 함량 0.26%로 기준치의 2배 이상이다. 이대로는 법 위반을 감수하고 조업하거나 주 조업지인 부산항, 여수‧광양항 주변 해역을 포기해야 한다.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특유의 선상 자숙 과정. 본선 그물에 걸린 멸치를 가공선으로 바로 옮겨와 삶은 뒤 발에 펼쳐 말린다. 김민진 기자 멸치잡이 권현망 선단 특유의 선상 자숙 과정. 본선 그물에 걸린 멸치를 가공선으로 바로 옮겨와 삶은 뒤 발에 펼쳐 말린다. 김민진 기자

대책을 부심하던 업계는 탈황설비(스크러버)나 연료 교체 장치 등을 고민했지만 실제 현장 적용은 여의찮았다. 대부분 대형 상선에 맞춰 개발된 것들이라 소규모 어선에 적합하지 않았다. 해역에 맞춰 연료유를 바꾸는 것도 현실성이 떨어졌다.

그렇다고 당장 조업을 중단할 수 없었던 업계는 울며 겨자 먹기로 황 함량이 0.03%인 경유를 대체유로 사용했다. 그러나 열효율이 중유 대비 60%에 불과해 조업경비가 1.5배 이상 증가했다. 부족한 화력을 채우려 더 많은 연료를 태워야 했기 때문이다. 갈팡질팡하던 업계는 통영해양경찰서와 머리를 맞댔다. 수차례 협의 끝에 해경 해양오염방제과에서 부생연료유 2호 ‘C9’을 권했다.

C9은 나프타를 분해하면 생성되는 대체 연료다. 석유사업법에 등록된 제품으로 주로 산업용 보일러 버너에 사용 중이다. 황 함량 0.0184%로 배출규제에 한참 못미치는 데다 열효율도 중유의 90% 수준으로 높다. 추가 장비나 교체 없이 연료만 바꾸면 돼 대체재를 찾던 권현망 선단에 안성맞춤이었다.

멸치권현망수협과 통영해양경찰서 실무자들이 중유 대체재로 낙점한 부생연료유 2호 ‘C9’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멸치권현망수협과 통영해양경찰서 실무자들이 중유 대체재로 낙점한 부생연료유 2호 ‘C9’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김민진 기자

수협과 해경은 작년 6월, 가을 어기 출어에 앞서 시연회를 열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중유와 비슷한 단가에 배출 기준을 너끈히 충족하면서도 효율도 기대 이상이었다. 반신반의하던 어민들도 그제야 반색했다. 남은 건 면세 품목 지정. 양측은 서둘러 수협중앙회와 해양수산부에 훈령 개정을 요청했다. 다행히 해수부와 중앙회도 발 빠르게 움직였고, 요청 석 달여 만인 지난해 9월 면세유로 등록됐다.

멸치권현망수협 최필종 조합장은 “지금은 전량 C9으로 바꿨다”면서 “조업 경비 절감은 물론, 오염 물질 배출량을 줄여 대기질 개선에도 이바지하는 등 긍정적 측면이 많아 지금은 다른 업종에서 벤치마킹할 정도”라고 전했다.

통영해양경찰서 한철웅 서장도 “민관 협업으로 민원 해소와 소득 증대를 이끈 좋은 사례”라며 “무작정 단속하고 벌하기보다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관이 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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