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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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성(1945~ )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날과 씨로 만나서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우리들의 꿈이 만나

한 폭의 비단이 된다면

나는 기다리리, 추운 길목에서

오랜 침묵과 외로움 끝에

한 슬픔이 다른 슬픔에게 손을 주고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어느 겨울인들

우리들의 사랑을 춥게 하리

외롭고 긴 기다림 끝에

어느 날 당신과 내가 만나

하나의 꿈을 엮을 수만 있다면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중에서

사랑의 본질은 변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승화다. 왜냐하면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과 씨로 만나기’ 때문이다. 날줄과 씨줄로 얽혀 아름다운 ‘한 폭의 비단’을 짠다. 사랑은 두 사람이 가진 가치의 물리적 합이 아니라 화학적 반응을 통한 제3의 가치 창조다. 변증법적 승화의 형식인 것이다.

실제의 현실에서 이것은 ‘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볼 때’ 발생한다. 여기서 ‘그리움’은 사랑의 간절한 마음이다. 그 마음으로 대상의 그윽한 눈을 들여다보게 되면 ‘하나의 꿈’ ‘한 폭의 비단’을 엮을 수 있는 계기를 맞게 된다. 결국 간절함이 초점인데, 이는 ‘외롭고 긴 기다림 끝’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가져야 하고 이를 이겨내야 한다는 의미다. 하여 사랑은 자신의 경박함과 비루함을 녹여내 이를 지고한 영성으로 변모시키는 의식이다.

김경복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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