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으로 대리만족” 밸런타인데이도 못 깨운 연애 세포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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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내 삶 살아가기도 버거워”
미혼 75.8% “연애 안 해” 응답
돈 드는 ‘비싼 취미’ 인식하기도
데이트폭력 등도 부정적 영향
연애 스트레스 대신 자기계발
쏟아지는 ‘짝짓기 예능’에 위안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14일까지 지하 2층 하이퍼그라운드에서 밸런타인데이 기념 디저트 기획전을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밸런타인데이를 맞아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이 14일까지 지하 2층 하이퍼그라운드에서 밸런타인데이 기념 디저트 기획전을 진행했다. 신세계백화점 제공

“연애는 손해인 것처럼 느껴져요.” 김지원(27) 씨는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답했다. 연애에 드는 노력만큼 행복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의미다. ‘썸’을 타는 단계부터 이별을 목전에 둔 아슬아슬한 권태기까지 김 씨에겐 그저 부담스럽다.

김 씨는 연애 대신 취미생활을 택했다. 콘서트장에 가고, 웹툰을 ‘정주행’한다. 소소한 즐거움 덕에 김 씨는 외롭지 않다고 했다. 김 씨는 “몇 번의 연애를 경험한 지금은 나를 더 즐겁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더 행복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밸런타인데이에도 젊은 세대들의 ‘연애 세포’가 깨어나지 않는 분위기다. 미혼자 10명 중 7명은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설문 조사 결과도 나왔다. MZ세대는 연애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에게 연애는 많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부산일보〉 취재진이 최근 접촉한 젊은 세대들은 연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연애를 ‘비싼 취미’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명품 선물, 파인다이닝이나 오마카세 데이트 등은 연애의 기본이 됐다. 고급 티 카페나 고가 한우전문점 등은 인기 데이트 코스로 자리 잡았다. 젊은 연인들이 무리하면서까지 찾아야 할 곳이 된 것이다.

최근 공개된 설문조사에도 이런 인식이 잘 담겼다. (주)피엠아이가 전국 미혼 20~59세 남녀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현재 ‘연애하고 있지 않다’는 응답은 75.8%에 달했다. ‘연애하고 있다’고 답한 24.2%보다 3배 이상 높다.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 1위는 ‘경제적 이유’였다. ‘마음에 드는 상대가 없어서’ ‘귀찮아서’ ‘관심이 없어서’가 뒤를 이었다.

연애가 소모적이라고 느낀다는 젊은 세대도 많다. MZ 세대 사이에는 연인 관계를 ‘계약직 절친’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연애보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이들도 늘고 있다. 자기계발을 중시하는 MZ세대 특성이 담긴 변화로 보인다. 사회에서 자리 잡기도 벅찬 청춘들에게 연애는 ‘사회생활 걸림돌’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사회초년생 류민재(30) 씨는 “30대가 되면서 친구들이 두 부류로 나눠졌다”며 “결혼을 목표로 하는 친구들은 열심히 연애를 하지만, 아닌 친구들은 30대 초반을 본인의 일에 집중하고 자리 잡아야 할 시기로 느낀다”고 말했다. 류 씨도 “당장은 내 삶을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바쁘다”고 했다.

사회적 분위기도 연애를 꺼리는 이유가 되고 있다. 주영은(25) 씨는 최근 줄잇는 데이트폭력 기사를 보고 연애를 포기했다. 주 씨는 “헤어졌는데 계속 연락하고 집까지 찾아오는 전 연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친구들을 보며 연애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미래 세대들도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느낀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연애 안 하는 세대’가 상당 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에 따르면 29.5%만이 ‘결혼은 반드시 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는 10여 년 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반면 ‘연애 예능’ 방송 프로그램들은 MZ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이어 가고 있다. 지상파 방송과 케이블TV,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들이 각기 새로운 포맷과 출연자로 꾸민 짝짓기 예능은 여전히 젊은 세대 사이에서 인기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요즘 젊은 세대는 결혼만이 아니라 연애도 현실적으로 생각한다”며 “대학생 때는 경제적으로 힘들고, 취준생이 돼서는 바늘구멍같은 취업문을 뚫는다고 바쁘고, 사회인이 돼서도 직장 내 경쟁이 치열해지며 연애를 할 틈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정 평론가는 “연애 예능은 판타지적 요소가 있는 경우부터 현실적인 경우까지 보는 이들의 니즈를 완벽히 만족시킨다”며 “MZ세대는 빡빡한 현실 탓에 연애 예능에 ‘과몰입’하며 욕망을 대리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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